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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N번방의 시초' 손정우 사건

손정우 범죄인 인도 거절 결정문 뜯어보기 中…잠입수사 허용해야 [승재현의 법대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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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기고에서는 특수한 브라우저를 사용해야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을 이용하여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를 운영한 손정우에 대한 수사·기소·재판 경과 과정, 미국의 범죄인 인도 청구과정, 이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 20부의 송환불허 결정 이유 중 인도 대상 범죄가 되는지, 그리고 절대적 인도거절 사유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았다.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 허가 불허 결정은 정말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결정 판시 내용의 당부와 관계없는 판사 개인에 대한 비난이 더 세지고 있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을 해야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판결 내용에 대한 비판은 정의롭고 바른 사회로 나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자칫 결정의 당부를 넘어 판사의 개인 신상을 공개하거나 인격까지 비난하는 일은 자제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결정문을 최대한 꼼꼼히 뜯어 살펴보고, 중립적이고 객관적 입장에서 왜 이러한 결정이 나왔는지 그리고 문제는 없는지 치열하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앞서 손정우 측 변호인은 범죄인 인도법 9조 2호 ‘인도범죄의 전부 또는 일부가 대한민국 영역에서 범한 것인 경우’에 따라 임의적 인도거절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범죄인 인도법의 특별법적 성격인 범죄인 인도조약 2조 4항에 의하면 ‘인도청구의 대상이 된 범죄의 일부 또는 전부가 대한민국 법에 의하여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고, 대한민국에서 그 범죄에 대한 기소가 계속 중인 경우에는 범죄인 인도를 거절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재량이 아니라 기소됐을 때만 인도를 거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손정우의 자금세탁 의혹에 관해 검찰이 기소하지 아니하였다면 인도를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또 손정우 측 변호인은 범죄인 인도법 9조 5호 ‘인도범죄의 성격과 범죄인이 처한 환경 등에 비추어 범죄인을 인도하는 것이 비인도적(非人道的)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따라 임의적 인도거절 사유가 있다고 하였다. 변호인 측은 미국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고, 비인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단순한 미래 사실에 대한 염려일 뿐이다. 단정할 수 없는 ‘주장’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 20부도 범죄인 인도법 9조 2호 및 5호를 주장한 손정우 측 변호인의 의견을 배척하였다. 이 부분도 지극히 타당하다. 그렇다면 왜 송환이 거절된 것일까? 손정우 측 변호인의 모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서울고법 형사 20부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관련 범죄의 예방과 억제를 위해 송환을 불허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손정우가 W2V를 통해 설계하고 운영한 거래 구조는 소비자가 잠재적인 제작·촬영자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소비자가 존재하는 이상 또 다른 아동 성착취물 운영자가 등장하여 다시금 착취물의 소비와 재생산을 조장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확산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아동 성착취물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W2V 회원에 대한 철저하고 발본색원의 수사가 필요하다. 성착취물의 소비자가 존재하는 한 범죄 발생요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국민인 W2V 회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이를 통해 우리나라 아동 성착취 범죄의 악순환을 야기하는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손정우의 신병을 대한민국에서 확보하여 관련 수사 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 수집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법원이 밝힌 송환불허의 이유다.

송환불허를 한 목적은 매우 아니 완벽하게 타당하다. 아동 성착취물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W2V 회원에 대한 발본색원의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이다. 그리고 관련자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처벌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송환불허 목적을 위해 선택한 이번 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

본 범죄는 인터넷에서 IP(인터넷프로토콜) 추적이 가장 어렵다는 다크웹을 기반으로 암호화폐(이진법 숫자의 나열)로 금전적 이익을 취득한 게 그 얼개다. 최첨단의 디지털 범죄다. 이러한 수사에서 중요한 것은 손정우의 신병 확보가 아니라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포렌식이다. W2V 회원의 발본색원은 IP와 암호화폐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서울고법 형사 20부 역시 암호화·익명화하는 기술적 특성으로 다크웹 이용자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판시하고 있다.

익명화된 다크웹에서 손정우는 회원의 실명과 주소 등 신상을 알 수 없다.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현금으로 계좌 송금을 받은 게 아니라 1회성 가상 계좌를 통해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으로 받았다. 송금자에 대한 개인 정보 역시 모른다. 사실 그 정보는 손정우가 아니라 송금 받은 거래소 압수·수색을 통해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손정우의 신병 확보를 통해 수사를 적극적으로 철저히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오히려 수사를 적극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는 범죄 수익을 적극 박탈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도’와 다크웹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규모, 불법성의 정도 등을 알 수 있도록 ‘잠입수사’를 허용하는 편이 낫다. 독립몰수제를 도입하면 검찰이 공소 제기를 할 수 없어도 요건만 충족하면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다.

다크웹에서 일어난 범죄는 초국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러 나라의 형사사법 주권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국제 사법공조 체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 이번 인도 불허 결정에 대해 미 연방 법무부는 ‘실망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범죄인 인도가 걱정되는 대목이다.

다음 기고에서는 마지막으로 서울고법 형사 20부가 설시한 ‘이 사건 인도범죄와 관련한 대한민국에서의 수사·기소 경과’에 대해 살펴보겠다.

세계일보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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