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이슈 故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단독] 가해 선수 마침내 최숙현 찾아 고개 숙였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도환 선수
9일 오후 경북 성주군 납골당 찾아 사죄
당초 부모 찾아 사죄하려 했으나 "딸 부터 만나고 오라" 호통에 불발
한국일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김도환 선수가 10일 경북 성주군 고 최숙현 선수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꽃은 문화체육관광부 최윤희 제2차관이 이날 들고왔다. 김민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 최숙현 선수 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도환 선수가 마침내 최 선수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 사죄했다. 고개를 떨군 김 선수는 자신의 폭행은 물론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 선수의 폭행 사실도 폭로했다.

9일 오후 5시40분쯤 찌푸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경북 성주군 가족납골당인 삼광사추모공원에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김도환 선수가 나타났다. 여준기 경주시체육회장과 함께 납골당을 찾은 김 선수는 입을 꾹 다문 채 굳은 표정으로 최 선수의 유골함과 사진이 있는 하늘추모관에 들어섰다. 그는 최 선수의 사진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여 회장이 "미안하다고 해라"며 등을 두드렸지만 김 선수는 입술과 손가락을 파르르 떨며 눈물만 글썽거렸다.

10분 남짓 최 선수 유골함 앞에 서 있던 김 선수는 "진실을 묵인해서 미안하다"며 "숙현이를 비롯한 모든 피해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김 감독과 장 선수와는 따로 연락하고 있지 않다"며 "그 쪽과는 따로 할 이야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선수는 "그동안 도저히 진실을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용기도 나지 않았지만 후배들이 국회까지 가서 증언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끄러웠다"며 "최숙현 선수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2016년 2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때 술을 마시던 감독이 불러 가보니 숙현이가 폭행을 당한 후 서 있었다"며 "감독이 '너희가 선배니까 맞아라'며 때렸다"고 증언했다. 또 "장 선수도 걸핏하면 숙현이를 때리는 것을 봤다"며 "선배가 후배를 때리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9일 고 최숙현 선수의 부모가 살고 있는 경북 칠곡군 기산면 집에 인기척이 끊겨 있다. 김민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선수는 당초 최 선수의 부모가 살고 있는 경북 칠곡군 기산면 집을 찾아 사죄를 하려 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최 선수의 아버지 최영희 씨가 여 회장을 통해 "아직 사죄 얘기를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전에 딸부터 만나는 것이 순서"라고 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숙현이 장례식 때 다른 가해자와 달리 김 선수만 찾아와 무릎 꿇고 사과했지만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 선수는 곧 최 선수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사죄하러 찾아뵐 생각이다.

최씨의 칠곡 집 일대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칠곡군 64동기회, 기산영우회, 기산면번영회), '폭압에 죽어간 고 최숙현 선수의 억울함을 해결하도록 국민청원에 동참합시다'(기산면 농업경영인회), '칠곡군 레슬링협회 부회장 최영희 자녀 고 최숙현의 한을 풀어주세요!'(칠곡군 레슬링협회)라고 쓴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려 있었다.

기산면 한 주민은 "운동선수 부모 밑에 자라 어릴 때부터 수영을 좋아했던 숙현이는 항상 인사성이 바르고 착했다"며 "하루 빨리 진상규명을 통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9일 경북 칠곡군 기산면 고 최숙현 선수집 인근에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김민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 최윤희 제2차관도 경주시청 여자검도부 합숙 훈련 장소인 경주 문화중고 검도연습장을 들린 후 성주 납골당을 찾아 10여분 참배했다. 최 차관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문화체육관광부 최윤희 제2차관이 9일 경북 성주군 납골당을 찾아 고 최숙현 선수를 참배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지난 6일 경주시청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 선수를 영구 제명했다. 김도환 선수에게는 10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들은 당시 최 선수에 대한 폭행과 폭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폭행한 적이 없으니 안타깝지만 사죄할 것도, 그런 것도 없다”고 말했던 김도환 선수가 최 선수에 대한 폭행 혐의를 인정하면서 김 감독과 장 선수의 폭행 여부에 대한 사실 규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의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선수 2명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주시청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고,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이 진행돼 왔다”며 “감독은 숙현이와 선수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폭언을 했고, 주장도 숙현이를 따돌림 시켰다”고 증언했다.

동료 후배 선수들이 제출한 진술서가 김 감독과 장 선수의 지시 아래 작성됐다는 폭로도 나왔다. "감독과 주장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강압적으로 작성됐다"는 전ㆍ현직 선수들의 진술서에는 감독과 주장의 폭행과 폭언 내용은 없었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소속 선수 2명은 8, 9일 검찰에 이들 가해자들을 고소, 고발했다.

팀닥터 안주현 씨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 중이다. 8일 경주시체육회로부터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고발된 안 씨는 지난달 23일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자필 진술서를 이메일로 제출했다. 진술서에는 ‘뉴질랜드 전지훈련 중 음주 상태로 최 선수의 뺨을 때렸지만 폭행 사유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과 안 씨가 최 선수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과 욕설, 폭행 등을 한 정황이 담긴 각종 녹취록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성주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성주 김성웅 기자 ksw@hankookilbo.com
성주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