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석유 대박’ 남미 가이아나에도 ‘자원의 저주’? [김향미의 ‘찬찬히 본 세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가이아나 조지타운에서 지난 3월2일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조지타운|AP연합뉴스




석유라는 보물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시시비비 다툼이 일어난 남미 국가. 언뜻 베네수엘라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는 베네수엘라의 이웃 가이아나의 이야기다. 가이아나에서 3월 대선 이후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이아나는 지난 3월2일 대선을 치렀다. 결과는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야당 국민진보당(PPP) 이르판 알리 전 의원의 승리였다. 하지만 연임에 도전한 집권 연합정당의 데이비드 그레인저 대통령은 최대 11만5000표가 무효표라고 주장, 선거 결과를 승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민자나 사망한 이들이 유권자로 잘못 등록됐다는 것이다. 당선자인 알리 전 의원은 그레인저 대통령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면서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개월 넘도록 대선 결과를 둘러싼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고, 최근엔 그레인저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며 미국의 압박이 시작됐다. 일각에선 ‘자원의 저주’가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그레인저 행정부가 민주적으로 정권 이양을 하지 않을 경우 징벌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의원들도 지난달 26일 성명에서 “미주 대륙에서 민주주의 미래와 법치를 위해 지속적인 불안정과 속임수는 사라져야 한다”며 그레인저 대통령이 공식 선거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미주기구(OAS)도 지난달 “그레인저 대통령은 결과에 승복하라”는 입장을 냈다. OAS의 옵서버(참관자)의 재검표에 따르면 알리 후보의 승리가 맞다는 것이다.

인구 78만명(2017년 기준)인 가이아나는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 약 400년 동안 식민지배를 받았다. 중남미 국가 중 드물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독립 후에도 경제를 일으키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고 2017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700달러 정도다. 2015년 미국 엑손모빌 컨소시엄이 가이아나에서 처음으로 유전을 발견했을 때 “석유 복권 당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이아나는 환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원유 수출을 시작하는 올해 가이아나의 GDP가 무려 86%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10년 안에 1인당 GDP가 3배 이상 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국제관계 전문 온라인 매체인 월드폴리틱리뷰의 로버트 루니 연구원은 지난 4월 가이아나의 민족 간 정치적 대립 등을 언급하며 “가이아나가 ‘자원의 저주’에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자원을 놓고 여러 이익 집단이 다투면서 국가가 정작 가난해지는 것을 가리켜 ‘자원의 저주’라 부른다. 가이아나에서는 인도계와 아프리카계로 정치적 지지층이 갈린다. 인도계 국민들이 지지하는 국민진보당이 1992년부터 2015년까지 집권했고, 2015년 대선에서 아프리카계의 지지를 받는 그레인저 대통령이 간발의 차로 승리해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석유는 주요 쟁점이었다.

당장 올해 원유 수출로 거대한 부를 거둬들여 가이아나인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희미해지고 있다. AP통신은 지난달 6일 “이번 대선은 독립 후 가이아나에게 가장 중요한 선거였다”며 “그러나 정치적 갈등은 가이아나인들의 삶을 마비시켰다”고 했다. 정부나 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국민들이 코로나19에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됐다는 것이다. 지난 4월 IMF는 코로나19와 유가 하락을 감안해 가이아나의 올해 성장 전망을 52.8%로 하향 조정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등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레인저 대통령이 정권 이양에 수긍할 뜻이 없다면서 당분간 교착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레인저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가이아나는 사기꾼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느리더라도, 우리의 길이 있다”며 부정 선거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 등 외부의 압박에 대해서도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나라에 인종이나 종교적 폭력 사태, 테러는 없다. 정치적 경쟁의 문제이며 우리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 유튜브 구독▶ 경향 페이스북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