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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저금리 시대, 커지는 이익의 비대칭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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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사상 초유의 저금리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금리는 돈의 가치에 다름 아니다. 금리가 상승하는 일반적인 경로는 두 가지이다. 경기가 좋으면 돈에 대한 수요, 특히 기업의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금리가 올라간다. 다른 금리 상승의 경로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물건의 가격이 상승함으로써 돈의 상대적 가치가 떨어지는 국면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위협하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림으로써 돈과 물건의 상대가격을 조절하게 된다. 물론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은 높은 상관성을 가지고 있는 지표들이기도 하다.

글로벌 경제 전반적으로 성장은 둔화되고 있고,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자취를 감춰 장기적으로 금리가 올라갈 일은 만무해 보인다. 한편 정책적으로 금리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는 부채가 있다. 빚을 많이 진 경제 주체들은 저금리와 인플레이션을 선호한다. 저금리는 이자 부담을 낮추고, 인플레이션은 돈의 실질가치를 떨어뜨려 돈으로 갚아야 할 부채의 상환 부담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채무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인플레이션은 중층적인 효과가 있다. 인플레이션이 금리를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과 같이 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는 환경이라면 일단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것이 채무자에게는 중요하다.

최근 가장 빠르게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경제 주체는 정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부 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인위적인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곤 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급증한 정부 부채가 부담으로 대두됐던 1950~1960년대 미국에서는 경제성장률로 추론될 수 있는 적정금리 수준보다 훨씬 낮은 금리가 고착화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240%에 달하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아베노믹스의 가장 큰 정책 목표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 시대의 부활이었다. 늪과 같은 디플레이션 경제에서 벗어나 경제의 활력을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중요했다. 막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니 어쩔 수 없이 금리라도 낮아야 한다. 일본의 장기 금리는 경제적 상식에 반하는 마이너스 수준까지 하락했다.

코로나19 펜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많은 국가의 공공부채가 급증하고 있어 저금리 기조 유지는 필수적인 상황이 돼버렸다. 인위적인 저금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비대칭성을 낳는다. 일단 가계와 기업의 비대칭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늘어난 가계부채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 가계는 순예금자이다. 한국의 가계 금융부채는 1800조원대이지만, 금융자산은 3700조원대이다. 한계 차입자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잠재적 위험이지만, 가계 전체적으로 보면 금리 상승이 소득을 늘리는 데 훨씬 유리하다. 저금리 기조의 고착화는 최근 한국 가계소득 정체의 핵심적인 이유이다. 반면 기업은 잉여자금보다는 부채를 많이 지고 있는 순차입자이다. 저금리는 가계의 부를 기업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비대칭은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에서 나온다. 저금리의 고착화는 그 자체가 실물경제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조합이 낮은 금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자산시장은 낮은 금리를 사랑한다. 더욱이 급증한 정부 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에서 펀더멘털보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게 되면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는 더 커진다. 시장 원리주의자에 가까웠던 국제통화기금(IMF)마저도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와 월스트리트(금융시장)의 부조응을 지적하고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금리가 만들어내는 이익의 비대칭성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돼온 현상이지만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이런 경향이 더 강화되고 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주식시장의 강세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주식시장의 장기 전망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저금리가 자산으로서의 주식의 메리트를 높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식은 경제가 성장해야 오를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장기간 하락하면서 마이너스까지 도달했던 일본과 프랑스 주식시장의 장기 성과는 초라하다. 우리나라 역시 사상 초유의 저금리 환경이 이어지고 있지만 코스피는 2011년 이후 장기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기간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 종목군은 인터넷과 바이오 등 성장에 대한 기대가 투영될 수 있는 몇몇 종목들에 불과하다. 다수의 종목들은 별 볼일 없어지고, 일부 종목들만이 성장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니 이들 종목 주가는 자기강화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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