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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현실화된 헥시트…"글로벌 기업 떠나고, 홍콩 임대료 20% 급락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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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보안법 시행 하루만에 헥시트 현실화

美상무장관 "기업, 홍콩 본사 이전 검토할 것"

홍콩 1분기 상업용 부동산 거래 85% 급감

영국, 중국 탄압 홍콩인 망명 최초로 승인

미·중 부유층 피해 예상에 최악은 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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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콩 상업지구 고층빌딩의 불빛이 사라지고 있다고 3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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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고층빌딩 사무실의 빛이 꺼지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해외 자본 및 인력이 홍콩을 탈출하는 ‘헥시트(홍콩+엑시트)’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이렇게 전했다. 홍콩 주요 사무실의 공실률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올랐다. 이 때문에 현지 사무실 임대료가 올해 12~20% 급락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중국이 1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시행한 지 하루 만에 글로벌 기업의 중국 이탈 분위기는 강하게 감지되고 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홍콩에 아시아 본부를 둔 모든 기업은 홍콩 보안법을 계기로 본사 이전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중국에 진출하기 위한 거점으로 홍콩을 택한 기업들이 대체 지역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중국과 홍콩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홍콩이 다른 중국 도시와 비교해 기업 경영 면에서 메리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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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별 사무실 임대료.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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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홍콩보안법은 홍콩에 거주하는 비영주권자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 직원이 추방되거나 벌금형을 받는 잠재적 기업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가능성은 작지만, 미·중 신냉전이 격화할 경우, 홍콩이 1983년부터 미 달러당 7.75∼7.85홍콩달러 범위로 가치를 유지하는 페그제(고정환율제)가 무너져 금융 시장이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을 더욱 압박할 방침이라는 점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홍콩은 이제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또 하나의 도시일 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작업을 지속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중국 보안법 강행 처리에 맞서,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일부 박탈했다. 일단은 안보 분야의 전략물자 수출 통제부터 시작됐지만, 향후 미국이 특별지위를 전면 박탈할 경우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때 붙는 관세(1.7∼2%)는 중국과 동일한 25%로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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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무실 공실률은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올랐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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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홍콩은 규제가 적고, 법인세율이 낮아 아시아에서 글로벌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로 꼽혔다. 현재 홍콩에 지역 거점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은 지난해 기준 1541개에 달한다. 이중 미국 기업은 18%(278개사)를 차지한다. WSJ에 따르면, 홍콩은 전 세계 상업지구 중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 뉴욕과 런던 임대료와 비교해도 40~50% 높다. 그러나 지난 1분기 홍콩 상업용 부동산 거래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85% 급감했다.

홍콩 인력 유출은 보안법 시행 하루 만에 본격화됐다. 영국 정부는 2일 처음으로 홍콩인의 망명을 승인하면서, 홍콩 인력 유출의 신호탄을 울렸다.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 전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 사이먼 정은 영국 해외시민(BNO) 여권 소지자 중 정치적 망명이 승인된 첫 사례다. 영국 정부는 이날 과거 BNO 여권을 가졌던 모든 홍콩인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이민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의회에서도 홍콩인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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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이 무너질 경우 미국과 중국에도 치명적인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양국은 이러한 상황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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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각에서는 새 보안법이 시행돼도 홍콩이 당장 쇠락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헥시트가 미·중 양국에 치명적인 만큼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홍콩은 1조 달러(약 1200조원) 규모의 투자자금이 모여 있는 아시아 금융 중심지다. 이곳 투자 자금의 절반 이상이 버진아일랜드(영국령) 등 조세회피처에서 오는데, 돈 주인은 대부분 미국과 중국의 최상위 부유층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 최대 부호이자 반중 성향으로 잘 알려진 리카싱 전 청쿵그룹 회장은 “홍콩보안법을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면서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를 줄여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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