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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탈원전 비용 결국 전기요금으로…3년만에 '허언'이 된 文공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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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월성 원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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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1일 스위스 정부는 ‘에너지 전략 2050’을 발표한다. 핵심은 탈원전이었다.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모두를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나고 불과 두 달 만에 내린 결정이다.

스위스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탈원전과 이를 보완하는 신재생에너지 확충을 위해 연간 4억8000만 스위스프랑(약 6000억원) 전기요금을 더 거두겠다고 공언한다. 4인 가구 평균 한 해 40프랑(약 5만원)의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서다. 국민의 이해와 동의(투표)를 받는 과정을 거쳤고, 9년이 지난 지금도 ‘에너지 전략 2050’ 문패 그대로 실행 중이다.

한국의 탈원전 정책은 여러모로 달랐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한다. 그해 7월 당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22년까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추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임기 내에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을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공언이었다. 하지만 그날 당정의 선언은 3년 만에 ‘허언’이 됐다.

지난 2일 산업부는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입법예고했다.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같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사용해 보전하는 내용이다. 원전 폐쇄를 하면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지게 될 비용을 이 기금으로 막겠단 얘기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원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충격이 남아있던 2000년대 초 한전 민영화에 맞춰 공익에 쓸 재원을 따로 만들 목적으로 조성됐다. 이후 한전 민영화는 없던 일이 됐지만 기금은 그대로 남았다. 기금은 전기요금에 3.7%만큼 자동으로 따라붙는 부담금으로 조성된다. 현재 규모는 4조9696억원(올해 계획 기준)에 이른다. 그동안 기금은 에너지 당국의 ‘쌈짓돈’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탈원전은 쌈짓돈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이 아니다. 7000억 원을 들여 개ㆍ보수한 월성 1호기는 가동을 멈췄고,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로 인한 손실 규모는 수조원대, 연관 산업 피해까지 고려하면 수십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정부는 일단 급한 불을 막아볼 요량이지만 결국 전기요금 인상, 관련 공공기관과 산업계의 재정 부실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탈원전 정책이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안전하고 깨끗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기초를 닦아나가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감추고 포장하고 미루고. 탈원전을 나쁜 정책처럼 보이게 하는 건 바로 현 정부다. 9년 전 스위스 정부가 했던 것처럼 ‘원전을 줄이면 이런저런 비용이 들지만 미래를 위해 같이 부담해 나가자’고 당당하게 선언하지 못하나. 정부에게 부탁한다. 제발 솔직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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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정책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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