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나온 부동산 대책은 이번을 포함해 21차례에 달한다. 그간 쏟아진 그 많은 규제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대책이 나오면 잠시 주춤하던 집값은 금세 틈새를 비집고 다시 치솟아 오르는 양상이 반복되면서 서울지역의 중위 아파트 가격은 3년 만에 50% 이상 올라 9억원을 훌쩍 넘었다. 강남을 규제하니 비강남의 중저가 주택 가격이 뛰고, 서울 전역을 규제하자 수도권의 비규제지역과 지방으로 투기가 번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대책은 늘 뒷북이었다. 결국 집값을 억제해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갖게 하겠다는 정책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 2∼3개월꼴로 반복된 규제가 오히려 백신 주사처럼 투기 세력의 내성을 키우면서 집값만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 전반을 되돌아보고 나무뿐만 아니라 숲 전체를 보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의 집값 상승은 풍부한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짙다.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경기 부양을 위해 한국은행은 금리를 0%대로 끌어내리고 양적 완화 카드까지 빼 들었다. 정부는 1, 2차 추경도 모자라 35조원대의 3차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동학 개미'가 밀어 올리는 최근의 주식시장에서 보듯 인화성 강한 유동성이 넘쳐난다. 불씨만 만나면 부동산 시장에서도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이는 국토교통부의 수요 억제책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눈덩이처럼 굴러다니는 시중 유동성을 건전한 투자로 돌릴 수 있는 범정부적 노력이 시급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최근 언급한 것처럼 BTO(수익형 민자사업)나 BTL(임대형 민자사업) 등을 활용한 민자사업으로 시중 유동성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일자리와 자금의 선순환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벤처 등 미래산업으로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조만간 구체화할 한국판 뉴딜에 이런 방안을 포함하길 바란다.
한계가 드러난 수요억제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공급 불안 심리도 잠재울 필요가 있다. 정부는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의 경우 주택보급률은 96%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확 넘도록 대대적으로 공급을 확대한다는 선제적 자세로 잠재적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 집값의 상승 기조 속에서 저소득층이나 청년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임대주택의 공격적 확대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 층고나 용적률 규제 완화, 도심의 노후 주택 밀집 지역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등 동원 가능한 정책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 투기 세력의 발호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하지만 집값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도심 지역, 인기 지역의 주택 공급 확대를 주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될 수 있다. 더 나은 환경, 더 좋은 집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는 정책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평범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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