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그동안 채권단의 지속적인 입장 표명 요구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HDC현대산업개발 측이 9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계약 조건 변경을 공식 요청하면서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현산 측의 협상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현산 측의 입장 표명은 최근 "6월 말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계약을 연장해주겠다"는 채권단의 최후통첩에 대해 더 이상 공식 대응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협상이 이뤄지더라도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최종 인수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현산 측이 이날 인수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조건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손실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다시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현산은 지난해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3228억원에 인수하고, 2조1771억원가량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총 2조5000억원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계약금만 지불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아직까지 주식매매는 물론 유상증자로 미루고 있다.
현산 측이 계약조건 변경의 근거로 제시한 사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아시아나항공의 가치가 급감하는 불가항력적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2019년 말 기준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인식되고, 1조7000억원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무려 4조5000억원 늘었다.
부채비율은 2020년 1분기 말 현재 계약 기준인 2019년 반기 말 대비 1만6126% 급증했다는 것이 현산 측 주장이다. 당기순손실 역시 2019년 12월 말 공시 대비 증가된 2019년과 2020년 1분기를 합쳐 8000억원 이상 확대됐다.
현산 측은 인수가격 산정의 근거가 된 아시아나항공 재무제표의 신뢰성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에 현산 측은 아시아나가 컨소시엄 측이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대규모 추가차입을 강행하고 부실계열사에 대한 자금 지원을 결정한 것 등도 계약조건 변경의 근거로 들었다.
여전히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분명하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기존 계약조건의 파격적 변경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수를 포기할 수도 있다며 채권단을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현산 측의 계약조건 변경 요구는 사실상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현산 내부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예정대로 인수할 경우 모기업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부정적 여론이 많다"면서 "채권단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파격적 계약조건 변경안을 제시한 후 인수 철회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금융권 관계자 역시 "채권단은 현재 최악의 경우 수까지도 고려해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다"며 "재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 측 역시 현산의 입장문에 대해 입장 발표를 유보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