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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대학 '권력형 성폭력' 언제까지 방치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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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희대, 한국외대까지 끊이지 않는 '알파벳 교수'들

위험 끝에 공론화했지만, 결과는 '솜방망이' 처벌

경징계 받거나, 소청심사위 통해 징계수준 낮아지기도

교원징계위원회 '깜깜이' 운영방식 바꿔야

학생단체 입법운동 추진하기도

CBS노컷뉴스 차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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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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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투의 흐름은 대학가도 덮쳤다. 피해자의 용기 있는 고백은 대학가의 다양한 성폭력과 성희롱 실태를 고발했다. 하지만 '대학가 미투'는 2년 뒤인 2020년에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교수와 학생이라는 위계질서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성폭력'의 고리가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깜깜이로 운영되는 징계위원회의 구성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희대, 한국외대까지 끊이지 않는 '알파벳 교수'들

최근 대학가에서는 교수와 학생 간 성폭력·성희롱 사건들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음악대학 소속 교수 A씨를 직위해제 한뒤 지난 4월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5일 밝혔다.

학생들에 따르면 A교수는 지난해 7월 유럽 학회 출장길에 동행한 대학원생 B씨에게 새벽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다가 B씨가 받지 않자 호텔 방에 찾아가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B씨가 명백하게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손을 잡는 등 부적절한 접촉을 했다.

이와 별도로, A교수는 음식을 입에 넣어주거나 머플러를 둘러주는 등 희롱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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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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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대 인권센터는 정직 12개월 이상의 중징계를 대학본부에 요청했다

한국외대에서는 L명예교수가 온라인 강의 중 여성혐오적 게시물을 학생들에게 읽도록 강제해 논란이 일었다.

L교수는 2020학년도 1학기 수업에서 자신의 블로그 글을 읽는 과제를 내줬는데, 해당 글에는 남성을 '물뿌리개', 여성을 '꽃'에 비유하면서 "집 꽃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비아그라를 먹어라" 등의 여성혐오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논란이 일자 학교 측은 지난달 25일 L교수의 강의 진행을 이날부터 정지하고, 대체 강사를 투입하기로 했다. 또 해당 사건을 성평등센터 조사위원회에 회부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지난 3일 경희대학교에서는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검찰 수사를 받던 교수가 2차례의 영장 신청 만에 구속되기도 했다. C교수는 지난해 11월 대학원생 제자 D씨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D씨가 정신을 잃자 호텔로 끌고 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통계를 보더라도, 대학가에서의 '권력형 성폭력'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고등교육기관 폭력예방 교육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에서 교수에 의해 발생한 성폭력(성희롱·성추행·성폭행) 사건은 2015년 48건에서 2018년 85건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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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끝에 공론화했지만, 결과는 '솜방망이' 처벌

문제는 피해자가 2차 가해 등을 무릅쓰고 어렵게 사건을 공론화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면서 같은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7월까지 123건의 성비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중 해임이나 파면의 중징계를 받은 건수는 65건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김경진 당시 무소속의원이 지난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성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교수 64명 중 34%는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중징계 처분을 받더라도 소송이나 '교원 소청심사위원회'를 통해 징계수위가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업 중 성희롱·성차별성 발언을 하고 2016년에서 2017년 사이에는 학생들의 머리를 때렸다는 의혹을 받는 인천대학교의 E교수는 학교에서 해임 통보를 받았지만, 소청심사결과 정직 3개월로 징계수위가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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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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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학생인데 징계위원회에서 배제… "입법운동 추진"

전문가들과 단체들은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로 교원 징계위원회의 구성방식을 꼽았다. 가해 교수가 강의실로 돌아오게 만드는'시스템'부터 고쳐야, 교수와 학생 사이 갑을관계 등 근본적인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립대와 사립대는 교원을 징계할 근거를 각각 '교육공무원 징계령'과 '사립학교법'에 두고 있다. 사립학교법 제62조와 교육공무원 징계령 제23조는 교원징계위원회에 임명할 수 있는 사람을 해당 학교의 교원 또는 이사, 변호사 등의 경력이 있는 외부인, 대학 내 법학 등을 담당하는 사람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징계위원회가 학교 내 원로 등 '내부인'을 중심으로 꾸려지거나 성별안배가 되지 않는 등 깜깜이로 운영되는 경우가 생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미정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교원이 가해자로 연루된 대학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징계 결정과정에서 적절성 등 문제가 제기된 적이 많았다"며 "교원이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이고, 학생이 피해자인 경우 학생대표를 징계위원회에 참관하도록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원과 4명의 공동연구자는 2018년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적절한 징계 결정에 대해서 담당자들은 회의적"이라며 "규정에 가해 사건에 징계 기준 원칙이 제시되어 있어도 징계위원회의 인적 구성과 결재 라인에 따라 징계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빈번하고, 징계위원회 구성원이 가해 교수의 동기나 선배, 지인이면 사건에 대한 적절한 징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32개 학생회·학생단체가 참여한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대학가 공동대응단' 기획단장 홍류서연(22)씨는 "대학 징계위 등에서 피해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모 교수의 성폭력 사건이 터졌을 당시, 피해자는 징계 결과를 기자를 통해서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 교수나 외부위원으로 구성되는 징계위원회의 카르텔은 너무나 공고하다"며 "피해당사자의 입장이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동대응단 측은 더 나아가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 대표자 참여 보장과 △대학 교원 성폭력에 대한 가중처벌 등 징계 강화 △대학내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긴 '성폭력 해결과 성평등한 대학을 위한 입법요구안'을 21대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반영한 관련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끝내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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