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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코로나 사태에 근무 규정 무의미… '무임 노동' 시달린다 [심층기획 - ‘돌봄센터’ 교사들의 열악한 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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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시간도 갖기 힘든 ‘극한 직업’ / 종일제 교사 경우 8시간 근무 규정 무색 / 사실상 하루종일 일해 ‘녹다운’될 지경 / 초과근무·연월차 수당 등 전혀 못 받아 /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겐 지급 대조적 / 기존 경력 인정 안되고 월급은 ‘제자리’ / 4대 보험 공제하면 실수령액 80만원 / 센터 운영비 등 재정적 문제도 심각 / 돌봄서비스 질적 수준에 영향 미쳐

“휴식시간이요? 바라는 건 욕심이죠. ‘공짜노동’이나 강요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울산의 한 다함께돌봄센터(이하 돌봄센터)에서 교사로 일하는 A씨의 말이다. 돌봄센터는 학교 수업이 끝난 뒤부터 부모의 퇴근 때까지 초등학생을 돌봐주는 아동복지시설이다. 맞벌이 가정 위주의 돌봄이 이뤄지다 보니 A씨가 근무하는 돌봄센터는 학기 중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된다. 실제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오후 1시부터 6시간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방학 중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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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다함께돌봄센터에서 교사가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다. 다함께돌봄센터지원단 제공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운영시간이 크게 늘었다. 2월부터 석 달간 부모들의 출·퇴근시간에 맞춰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했다. 종일제 교사는 8시간, 시간제 교사는 4시간 근무하게 돼 있지만 의미 없게 된 것이다. 운영시간 동안 교사 2명이 상주하도록 돼 있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다 보니 사실상 별도의 휴식시간을 갖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연월차 사용도 어렵다. 교사들이 연월차를 사용할 경우 대체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인건비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게 센터 측의 설명이다.

A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하루종일 센터에 있는 아이들이 늘었다”며 “교사 한 명당 20명의 아이들을 쉴 틈 없이 돌보려니 ‘녹다운’이 될 지경”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이 없다. 규정된 시간 외엔 타의로 자원봉사를 하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평소에도 논란이 된 돌봄센터 교사의 열악한 처우가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각급 학교가 단계적으로 문을 열고 있지만 코로나19 방역차원에서 정상 운영되지 않고 있어 돌봄센터의 업무 과중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은 최저임금 수준에다 초과근무수당이나 연월차수당 등이 없어 ‘공짜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괜한 투정이 아니다. 사회복지사 등 비슷한 자격을 갖고 하루 8시간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지역아동센터의 교사들에겐 수당이 지급된다. A씨의 돌봄센터가 있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지역아동센터 교사와 A씨의 임금은 한 달에 33만원(명절수당 제외), 연간 416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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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보건복지부와 다함께돌봄센터 지원단에 따르면 전국에 225개의 돌봄센터가 있다. 이들 돌봄센터는 지역아동센터와 달리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다. 맞벌이·한부모·다자녀 가정의 저학년 자녀가 우선 대상이다. 센터마다 운영시간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학기 중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방학기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인건비 등은 국비 50%, 시비 25%, 구비 25%로 지원된다. 다만 호봉표가 세워지지 않아 기존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근무연수가 늘어나도 월급은 사실상 제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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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의 한 돌봄센터는 20명의 아이들이 이용한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이 아이들이 학원 등을 가고 오느라 시간대별로 10명 이내만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 후 18명 이상 하루 종일 있을 때가 많다. 이 센터 교사 B씨는 “일은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온라인 수업의 경우 학년별로 진행돼 교사 두 명이 한꺼번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조리사가 돌봄아동의 밥도 챙겨준다. 조리사의 인건비는 하루 4시간 기준으로 지급된다. 방학 때는 8시간 근무해 점심과 저녁이 제공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방학이 길어진 것과 같은 상황이지만 인건비를 줄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점심만 제공했다고 센터 측은 전했다. 20명이 정원인 충북의 한 돌봄센터도 사정이 비슷하다. 센터장이 행정 등 다른 업무를 하면 교사 한 명이 20명의 학생을 돌봐야 하는 처지다. 교사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센터장은 여기에 1만6000원 정도 더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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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의 ‘야호평화 다함께돌봄센터’는 코로나19 사태 후 교사 두 명이 13명을 돌보고 있다. 코로나19 우려로 일부 학부모가 자녀를 보내지 않아 아이들은 평소보다 좀 줄었다. 하지만 주중 4시간씩 진행하던 돌봄서비스가 온종일 이뤄지다 보니 교사들은 교대근무를 해도 녹초가 될 지경이다. 연월차는 코로나19 이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하는 교사의 인건비는 한 달에 92만5000원. 4대 보험료를 공제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 남짓이다.

돌봄센터엔 운영비로 국가에서 매달 30만원이 지원된다. 그러나 공과금 등 지출 범위가 한정돼 있다. 시급하거나 필요한 곳이 생겨도 활용할 수 없다. 지자체에서 추가로 운영비를 지원하기도 하나 액수가 작아 운영난을 호소하는 곳이 많다.

김성천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보다 높은 사회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해선 종사자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며 “처우 향상은 우수한 인재가 많이 유입되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질 좋은 돌봄서비스가 제공되면 모든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합리적인 시설과 인력,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아 민주노총 울산본부 교육선전국장도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비슷한 영역의 근로자들의 임금격차가 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돌봄서비스는 피로도가 높은 만큼 적절하게 근무조건을 개선해야 돌봄서비스 질도 나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봄센터 종사자들의 하소연을 직접 듣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영남지역 지자체의 한 돌봄센터 담당자는 “기존 사회복지시설 근로자 인건비 기준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임금이 낮게 책정된 것은 사실”이라며 “국고보조사업인 만큼 시작할 때 평균적 인건비 등을 따르게 했으면 지방정부도 수월한데, 그렇지 않다 보니 해가 갈수록 (돌봄센터 교사들의) 민원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돌봄센터 종사자들의 수당 문제 등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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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창녕다함께돌봄센터 제공


◆ ’방과후 돌봄’ 해외 사례

해외에서는 어떤 제도와 시스템으로 방과후 돌봄을 하고 있을까.

독일의 대표적인 방과후 돌봄기관은 ‘호르트(Hort)’다. 호르트는 학교나 학생의 집과 가까운 청소년복지기관, 청소년사회교육기관 등에 설치돼 있다. 방과후 가정에서 정상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6세에서 10세까지의 취학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14세까지의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주별로 운영시간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오전 7∼8시부터 오후 4∼5시까지이다. 호르트에서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만들기와 미술, 스포츠 등 자유시간을 갖는다. 지도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숙제를 하는 등 학습시간도 있다.

호르트의 재정지원은 주정부에서 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호르트에 머무르는 시간과 수입에 따라 비용을 부담한다.

호르트 교사들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아동·청소년에 대한 치료보육학 등 전문지식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교사들은 양성과정과 실습과정을 통해 훈련된다. 유치원교사 등과 비슷한 수준의 처우를 받는다.

스웨덴은 방과후센터, 가족센터, 방과후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들 센터는 주로 학교시설 내에 설치된다. 가장 전형적인 방과후 프로그램 시설은 레저타임센터다. 이른 아침에 식사를 포함해 자유활동을 하다가 수업시간에 맞춰 학교로 이동한다. 학교가 끝나면 레저센터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민간기관인데도 공립 방과후 교육시설과 같은 수준으로 지원, 관리·감독한다. 교사는 3년제 대학교육을 받고 아동발달 관련 과정을 이수했거나 지방당국의 자체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미국의 방과후 아동보육시설은 대다수 민간에 의해 설립·운영된다. 시설장과 보육교사, 보조교사, 자원봉사교사, 상담사, 조리사 등이 근무한다. 시설장들의 교육수준은 학사학위 이상 또는 아동발달 관련 과정 이수 학력 소지자가 90%를 넘는다. 전임보육교사도 상당수가 대학에서 공부했거나 아동발달과정을 이수했다. 미국의 경우 교사의 질은 높지만 적절한 보상이나 지위가 주어지지 않아 이직률이 35%에 달할 만큼 높다.

울산=이보람 기자, 전국종합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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