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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우물 짓고 부패와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번영의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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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따끈따끈 새책] ‘번영의 역설’…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머니투데이

1850년대 미국은 오늘날 앙골라, 몽골보다 더 가난했지만, 지금은 세계 최강국이다. 한국은 1960년대 1인당 GDP(국내총생산) 155달러의 극빈국이었지만 2016년엔 2만 7500달러의 부유한 나라이면서 다른 나라를 돕는 국가가 됐다.

이런 ‘기적’과 같은 극적인 전환은 수십 년 전 똑같이 가난했던 나라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공식 개발 원조에 투입된 돈이 1960년 이후 4조 3000억 달러(약 5242조원)가 넘는다.

하지만 1960년대 가장 가난하던 나라들 다수는 지금도 가난하며 심지어 20개국은 되레 더 가난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책의 공저자 에포사 오조모의 경험은 이런 의문에 적절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에포사는 가난한 에티오피아 소녀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비영리 단체를 이끌고 나이지리아에 우물을 설치하기로 했다.

어렵게 자금을 모아 5개 우물을 설치했지만, 몇 달 뒤 우물들이 고장 나 방치됐고 결국 이 일에서 손을 떼야했다. 실제 아프리카에는 이렇게 버려진 우물이 5만 개가 넘고 어떤 지역은 80%가 넘는다.

눈에 보이는 가난의 징표들을 바로잡는 데 투자하는 방식으로 직접 지원하는 해결책은 가난을 일시적으로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도 눈에 띄게 바꿔놓지는 못한다.

저자인 크리스텐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원만 투입하면 가난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밀어붙이기 전략’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는다.

선한 의도를 가진 전략이라도 이런 시도는 고통을 다스릴지언정 질병 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표적 실패 사례가 2014년과 2015년 1000만개 넘는 화장실을 지었고 지난해까지 6000만개를 더 지을 계획이었지만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인도의 위생 시설 개선 사업이다.

서구의 시스템 도입이 번영의 첫 단추라고 믿는 발상도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한 사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해온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혼란과 부패를 가중시키기 때문. 제2의 한국 만들겠다고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제도 개혁의 실패는 제도 설립보다 가치관의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부패 역시 마찬가지.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 3분의 2 이상이 100점 만점에 50점 미만이며 76억 세계 인구 중 60억명이 부패한 정부 아래 살고 있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은 훌륭한 리더십으로 부패를 물리치는 방안을 선호하지만, 부패와의 싸움은 지지부진할 뿐이다.

저자는 “이제는 부패의 ‘증상’이 아닌 부패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며 “부패를 줄이려면 부패와 맞서 싸우는 데 노력하는 대신, 부패 대신 채용할 대체물이나 부패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가난한 나라가 ‘번영’의 지표로 삼는 잘못된 기준이 ‘인프라’다. 인프라만 개선할 수 있다면 해외투자가 홍수처럼 밀려들고 번영이 뒤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프라는 효율적인 도구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학교를 지었다고 교육의 질이 나아진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의 10억 달러짜리 아프가니스탄 교육 인프라 투자, 탄자니아의 2억 달러 규모 학교 인프라 투자, 짐바브웨이의 병원 사업 모두 부유한 나라의 인프라를 그대로 복제했다가 실패로 끝난 사례들이다.

저자는 제대로 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경제 발전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 제기하는 질문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인프라보다 기회와 잠재력을 봐야 한다. 겉으로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새로운 시장 혹은 번성하는 시장을 창조할 좋은 기회인 경우가 많기 때문.

둘째 사람들의 투쟁과 비소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힘겨운 투쟁은 거대한 잠재력을 대변한다. 힘겨운 투쟁은 흔히 ‘비소비’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데, 상품을 사지 않고 버티는 ‘비소비’자들이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나면 시장은 잠재력으로 가득한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셋째, ‘밀어붙이기’ 전략 대신 ‘끌어당기기’ 전략를 추구해야 한다. 비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면 이 시장은 자체 생존을 위한 다른 요소들, 인프라와 교육제도, 문화 분야 등을 끌어당길 수 있다. 이 전략은 지속가능한 번영을 촉발하는 데도 훨씬 더 효과적이다.

절망에 가까운 가난을 경험했던 미국이 싱어의 재봉틀, 이스트먼코닥의 카메라, 포드자동차의 모델 T 같은 혁신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바뀐 것처럼 인프라 너머의 가치를 끌어당길 줄 아는 나라만이 지속가능한 생존을 모색할 수 있었다.

책은 일본의 소니와 도요타, 한국의 기아와 삼성, 포스코, 케냐의 사파리콤, 아르헨티나의 이구아나픽스 등 수많은 혁신으로 번영에 진입한 사례들을 잇따라 소개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통해 세상은 여전히 기회로 가득하다고 희망을 꺾은 이들에게 위로를 안긴다.

◇번영의 역설=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등 지음. 이경식 옮김. 부키 펴냄. 472쪽/1만98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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