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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원청의 하청 노동자 '사용자성', 우린 판단 못해" 발 뺀 중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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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들, 원청 사업주의 노동조건 '실질적 지배력' 놓고 조정신청

중노위 "입증 부족…조정대상 아냐" 판단 피해

하청업체가 임금 주고 교섭하면 '묵시적 근로계약'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해석도

大法 판결에도 "'실질적 지배력' 입증 부족"…사실상 원청 사업주의 손 들어줘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노컷뉴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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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할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사실상의 '면죄부'를 쥐어줬다.

간접고용 노동자가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을 가려달라는 조정신청을 냈는데, 정부가 이를 밝히기 어렵다며 조정을 거부한 것이다.

◇"'진짜 사장' 원청, 교섭 나와라" 간접고용 노동자들, 중노위에 조정신청했지만…

고용노동부 소속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지난달 20일 제기한 조정신청에 대해 "노동관계 당사자 간의 노동쟁의라고 단정하기 어려워 위원회의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지난 1일 밝혔다.

조정신청을 제기한 이들은 금속노조 9곳, 공공운수노조 2곳, 생활폐기물 미화원 민주일반연맹 1곳 등 12개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한국GM, 아사히, 지역난방공사, 한국마사회 등 원청 기업에 대해 지난 4월부터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원청이 영향을 행사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며 교섭을 요구해왔다.

이번에 노동자들이 중노위에 제기한 조정신청을 간단히 요약하면, 원청 사업주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할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니 이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성'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만약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교섭을 벌일 수 있고, 파업 등 쟁의행위를 벌일 가능성도 열린다.

그런데 중노위는 이번 결정서에서 두 가지 답을 내놓았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직접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정작 노조가 조정신청한 원청 사업주의 '실질적 지배력'은 밝히기 어렵다는 답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대기업·공공부문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에 대해 원청 기업의 '공동사용자 책임'을 묻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는 배치되는 해석이기도 하다.

주목되는 지점은 중노위가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에 각각 내놓은 결정서의 내용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최근 간접고용 문제가 불거진 주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함께 제기한 조정신청에 대해 중노위가 한번에 같은 답을 내놓은 만큼, 사실상 원하청 사용자성 문제에 대한 노동당국의 태도를 드러낸 답변인 셈이다.

◇묻지도 않은 '묵시적 근로계약' 여부는 답변…정작 근거는 현실과 동떨어져

그렇다면 '직접적·묵시적 근로관계'는 무엇이고, '실질적 지배력'은 무엇일까?

우선 중노위는 원청 사업주들이 사내하도급 회사·자회사 소속인 하청 노조원과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고 밝혔는데, 애초 이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 이견 없이 동의하는 문제다.

다음으로 중노위는 양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묵시적 근로관계'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위장도급이다. 하청사업주가 형식상으로만 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실제로는 사업주로서 독자성·독립성이 없어 원청과 하청 노동자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한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중노위는 두 가지 근거를 내세워 '묵시적 근로계약'이 성립한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내하도급사(자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있고 △일부 해당 노조들은 근로계약 당사자로서 사내하도급사(자회사)와 단체교섭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중노위의 주장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얘기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오민규 정책위원은 "단순히 하청업체가 임금을 지급한다는 사실만으로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라는 주장도 말이 안된다"며 "사용자가 세워놓은 바지사장을 통해 임금만 지급한다고 끝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용자성이 있는지를 따져야 할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사내하도급사(자회사)와 단체교섭을 진행한 일을 마치 노동자 스스로 이들을 사용자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어렵다. 일반적으로 원청 사업주는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노조로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을 뻔히 알지만, 하청업체와 교섭을 벌여야 원청을 포함한 사측에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얘기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질적 지배력說' 법원 판결 잇따라도 "노조 입증 부족" 탓하며 발 뺀 중노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확인을 요구했던 '실질적 지배력' 여부에 대해서는 중노위는 "노동조합의 주장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며 판단을 보류했다.

'실질적 지배력설(說)'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건 중 일부 영역이라도 원청 사업주가 실질적인 영향력·지배력을 행사하면 그에 대해서는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하청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과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이나 노동시간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실제로 일하는 원청 사업주의 사업장 건물 안에 휴식 공간을 새로 지으려면 보통 원청 사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노동조건 중 특정 영역에 원청 사업주가 하청업체와 공동으로, 혹은 단독으로 결정권을 행사한다면 간접고용 노동자와 하청업체(자회사) 간의 근로계약 관계 성립 여부와 관계없이 제3자인 원청과 공동, 혹은 단독으로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최근 잇따라 내려진 바 있다.

대표적 사례가 2010년 현대중공업 판결이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업체를 폐업하는 수법으로 사내하청 노조활동에 지배·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판결 받았는데, 이 때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원청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라고 인정햇다.

또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조합에 대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등의 임직원과 협력업체 대표들이 노조 와해 공작을 벌인 데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에서도 '실질적 지배력' 개념을 차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노위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답변에 대해 조정신청을 제기한 노동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미 법원 판결 과정에서 불법파견까지 인정받고, 대법원이 원청 사업주를 사용자로 인정한 사례조차 '입증 부족'이라는 중노위의 답변은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당장 조정을 신청한 금속노조 9개 사업장 중 한 곳이 바로 2010년 대법원 판결을 받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다. 또 현대자동차와 한국GM 2개 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고, 5개 사업장 또한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실질적 지배력'에 대해 '알고도 모른 척'한 듯한 중노위의 답변이 나온 배경은 앞서 거론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와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금속노조 법률원 탁선호 변호사는 "중노위는 표면적으로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라 사용자성을 인정할 수도 있다고 봤지만, 실질적으로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로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입증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즉 '원청과 하청 근로자들 사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는 수준이 돼야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경영계의 주장을 중노위가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탁 변호사는 "원청이 부분적·중첩적으로 영향력, 지배력을 미치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세부 검토 없이 한 마디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정말 원청, 공공기관, 지자체 등이 실질적 지배력, 영향력을 미치는 점을 단 한 부분도 입증하지 못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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