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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집안 남자 4명이 참전용사···엄마는 4번 혼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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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후유증 겪는 월남전 참전용사 김해연 씨

형과 한 집 살던 작은아버지들 6·25 참전

“나라가 먼저, 다시 돌아간다해도 같은 선택”

“가족 대대로 국가를 위해 싸웠다는 데 한 점 후회가 없어요.”

일가족 4명이 6·25 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했다 아픔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선택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월남전 참전용사 김해연(73) 씨 얘기다.

중앙일보

월남전 참전용사 김해연 씨가 5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6·25 전쟁 참전용사인 형과 작은아버지 등과 함께한 가족 사진을 들고 있다. 우상조 기자/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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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의 형 고 김무연 씨, 첫째 작은아버지 김진모 씨, 둘째 작은아버지 김진도 씨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 각각 2008년 국립이천호국원, 2005년 국립대전현충원, 2011년 국립영천호국원에 잠들었다. 6일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중앙일보와 만난 김 씨는 “‘네가 있기 전에 나라가 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어길 수 없었다”며 “6·25 전쟁이 남긴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내가 월남전 참전을 결심했던 이유”라고 말했다.

6·25 전쟁 당시 4살이던 김 씨는 한집에 살던 형과 작은아버지들에게 입영통지서가 전달되던 장면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입영통지서가 전달될 때마다 어머니는 혼절했고, 대문에는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무운장구(武運長久)’ 깃발이 걸렸다. 김 씨는 “형과 작은아버지들은 살아 돌아왔지만 전쟁터에서 입은 총상에 여생을 고통 속에 보냈다”며 “월남전 참전 의사를 밝혔을 때 어머니가 반대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1969년 군에 입대한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1971년 3월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 씨는 맹호부대 옆 후송병원에 배치됐다. 부상자와 사망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게 주 임무였다.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서 매 순간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의무병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쟁터의 불문율조차 베트남에서는 통하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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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참전 당시 김해연(왼쪽 네 번째) 씨와 전우로서 함께 복무한 고 조양호(왼쪽 첫 번째) 한진그룹 회장. 우상조 기자/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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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 무사히 귀환했지만 전쟁은 그에게 큰 아픔을 남겼다. 뒤늦게 나타난 고엽제 후유증 때문이다. 2005년 10월 뇌출혈 수술을 받은 뒤에야 그는 수풀이 울창한 전쟁터에서 비처럼 떨어지던 게 고엽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고혈압에 시력·청력 장애와도 싸워야 했지만 국가는 이를 고엽제 후유증이 아닌 후유‘의’증으로만 인정했다. 고엽제와의 관련성이 어느 정도 소명되었으나 명백한 인과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고엽제 피해자라는 점을 인정받은 건 2012년 고엽제 후유증 질환인 허혈성 심장질환이 나타나고서였다.

상이등급 7급을 받은 김 씨는 한 달에 치료비 명목으로 60만2000원, 보훈예우로 7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는 “다른 민주화 유공자는 물론, 해외 월남전 참전국 용사들에 비해선 솔직히 대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대가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울컥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베트남으로 가기로 했던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나라의 운명을 위해 몸을 던지는 건 당연하다”며 “형과 작은아버지, 그리고 나의 희생으로 우리 후손이 조금 더 편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현충일을 맞을 때마다 이 고통이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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