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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 사람이 읽는 법]전체주의가 사라졌다는 착각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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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1, 2/한나 아렌트 지음·이진우 박미애 옮김/550쪽, 325쪽·2만8000원, 2만2000원·한길사

동아일보

“사회는 항상 어떤 사람을 그가 자처하는 대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보인다. 천재인 체하는 별종은 천재로 받아들여질 기회를 갖는다. 분별력의 결여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경향이 강화된다. 자신의 의견을 흔들림 없는 태도로 제시하는 사람은, 그가 얼마나 잦은 오류를 드러내는가에 상관없이, 여간해서 자신의 특권을 상실하지 않는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1906∼1975)가 1951년 발표한 책이다. 저자는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 핍박이 행해진 시대를 살아내며 당대 정치체제를 냉정히 통찰했다. 옮긴이는 “전체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면 이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정치체제도 언제든 전체주의의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고 썼다.

증오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대중의 갈증을 동력원 삼아 ‘다름’을 ‘틀림’으로 몰아세우는 교묘한 방법론이 만연한 시대다. 소속된 집단의 주장과 어긋나는 생각을 드러내려면 많은 것을 걸어야 한다. 배신자에 대한 비난은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 메시지가 반복 학습된다. 전체주의는 스스로 전체주의임을 모르기에 강력하다.

“엉터리임이 밝혀진 뒤에도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들의 거짓말에 집착하는” 전체주의의 기운이 구석구석 차고 넘치는 시절의 복판에 앉아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서를 읽는 일은 효용 없는 자학행위다. 끔찍한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 드문드문 든다.

“비전체주의 세계의 사람들이 전체주의 지배를 맞이할 자세를 갖게 된 것은 한때 주변부적 조건에 국한된 경험이었던 ‘외로움’이 이제 매일 겪는 대중의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대중을 무자비한 과정 속으로 내몰고 그들을 조직한다. 이 과정은 현실로부터의 자멸적인 도피 행각처럼 보인다.”

아렌트가 많은 사진 속에서 손에 들고 있던 담배 연기가 마침표 뒤로 냉랭하게 배어 나온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연민을 말끔히 털어내 지운 듯한 문장들이다. 아렌트는 연인 관계였던 유부남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가 나치를 지지하자 환멸을 느껴 그를 떠났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실존주의 철학자가 나치에 부역했다가 패전 후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인간의 지성에 대한 아렌트의 불신에 하이데거가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체주의 운동은 고립된 개인들의 대중 조직이다. 개인 성원에게 총체적이고 무제한적이며 무조건적이고 변치 않는 충성을 요구한다. 권좌에 앉은 전체주의는 반드시 모든 일류의 재능을, 정권에 대한 그들의 호감과는 상관없이, 미치광이들과 바보 천치들로 대체한다. 지적 능력과 창조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그들의 충성심을 가장 잘 보증하기 때문이다.”

공연히 두 권으로 분리하지 않은 가뿐한 페이퍼백 번역서가 빨리 나와서 많은 독자가 읽게 되기를 바란다. 상황의 이면을 돌아보는 작은 계기는 될 것이므로. “인간의 본성 자체를 바꾸려 하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목표가 완성되기 전에.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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