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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취한 꿀벌은 다리가 잘린다[오늘과 내일/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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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수액 잘못 마시면 쫓겨나듯

‘강정호 경각심’ 끝없이 강조해야

동아일보

김종석 스포츠부장


한 유명 스포츠 스타가 있다. 지도자를 거쳐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인기가 아예 없을 뻔했다. 과거 음주운전 실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신 해선 안 될 일이다. 운이 좋았다. 다행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리기사도, 콜택시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득남을 축하하러 온 친구들과 집에서 소주를 마신 뒤 택시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려고 차를 몰다 음주단속에 걸리기도 했다. 이제 그는 성인이 된 자녀에게 절주를 강조한다. 며칠 전 그를 만난 한 후배는 “형이 식사 후 대리운전까지 챙겨주더라”고 전했다. 술 마신 다음 날 새벽 골프라도 있으면 그는 꼭 택시를 탄다.

이처럼 다시 찾아온 인생의 황금기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대단하다. 법규와 처벌이 강화되고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지는 여론의 시선이 따가워진 요즘 술 먹고 핸들을 잡는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지난해 한 프로야구 스타는 회식 다음 날 아침 자녀를 등교시키고 귀가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숙취운전’ 사실이 드러나 19년 프로생활을 하루아침에 마감했다. 성실한 이미지를 가진 그였지만 모든 걸 잃었다.

음주운전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무어는 ‘멍청한 백인들’이란 책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건 자신의 삶만 망치는 데 그칠 수 있지만 음주운전은 남의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다’고 썼다. 저자는 음주운전자에게 당한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곧게 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음주운전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한 이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습은 되풀이된다. 마약중독보다 음주운전 재범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스포츠 무대에서도 음주운전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KBO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해마다 음주 관련 징계가 나왔다. 단속 기준과 처벌 수위를 한층 높인 ‘윤창호법’이 시행된 지난해 역대 최다인 4건에 이르렀다. ‘주량=운동 실력’으로 간주하거나 술에 관대한 문화가 여전한 탓이다.

명장 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17년 프로사령탑 재직 기간 연초 시무식마다 빼놓지 않은 말이 있다. “음주운전 절대로 해선 안 된다.” 피, 땀, 눈물 흘려가며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어서다. 김 전 감독은 “강한 훈련으로 몸이 기억해야 경기를 이기듯 반복교육만이 음주운전을 근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연맹이나 구단들은 신인뿐 아니라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 음주운전을 안 하겠다는 단체 서약이라도 받으면 어떨까. 음주운전은 당사자뿐 아니라 동료, 감독, 구단도 공동 책임이 있다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한영관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은 “음주운전이 평생 죄악이라는 걸 어려서부터 심어줘야 한다.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젠가 유튜브로 벌들의 세계를 다룬 BBC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어떤 일벌은 꿀을 수집하러 갔다 발효된 수액을 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정신을 가누기 힘들게 된다. 비틀거리며 집을 찾은 벌들은 경비 벌들에게 출입이 통제되거나 심하면 다리가 모두 절단되는 형벌을 받는다. 벌들도 음주비행을 죽음의 키스로 여기는 듯하다.

음주운전으로 삼진 아웃된 강정호가 국내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1년 자격정지가 솜방망이라거나,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등 논란이 거세다. 5일 귀국한 그의 거취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닐지 모른다. ‘제2의 강정호’가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음주운전에 ‘멀리건’은 없어야 한다. 공동체 운명과 직결되는 개인의 책임 있는 행동이 코로나19로 더욱 절실해지지 않았나.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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