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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세상사는 이야기] `종이 한 장`으로 얻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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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땅 주인께서 경고문을 붙이셨습니다. 서원에서는 (험한 땅을 정리해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언제 오시면 차라도 한잔하고 가십시오."

이런 글을 작은 종이 한 장에다 붓펜으로 공들여 썼다. 내가 지키는 서원 안쪽 산속, 잡목 무성한 버려진 밭을 최근에 누군가가 일구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경고하는 무서운 경고문이 여기저기 나붙었기 때문이다. 그 밭 절반의 주인인 분이 붙인 것으로 남의 땅에 '함부로 경작한 사람에게는, 형법 ×××조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엄중한 내용이 탄탄한 비닐 코팅에다 풀기 어려운 장치까지 하여 고정돼 있었다. 나는 여러모로 걱정이 됐다.

모르는 누군가가 산을 넘어와서 보란 듯 삽을 척 꽂아놓고 갈퀴, 낫, 톱까지 늘어놓고 간 것 자체가 두려웠던 데다 경고문의 내용이 무서우니 잡목을 제거하는 큰 수고를 한 사람이 보면 화가 나겠고, 화난 사람은 경고문을 붙인 사람이 의당 인접해 사는 나라고 생각할 텐데 혹시 앙심이라도 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더해졌다. 외진 곳에 혼자 사는 데다 바로 얼마 전 낯선 인물의 출몰로 한 차례 소동이 있었던지라 더욱 그랬다. 산을 넘지 않는 바에야 서원을 지나야 출입이 되는 밭을, 누군가가 나 모르게 드나들며 거기에다 보란 듯 꽂아놓고 간 삽과 그 곁의 갈퀴, 톱, 낫을 보면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밭뿐만 아니라 그 밭에 이르는 산길까지 조금씩 손봐놓은 것을 보면 천사가 다녀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천사든 난입자든 정체를 모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궁리 끝에 그 박아놓은 삽과 무서운 연장들 곁에 갖다 둘 생각으로 종이 한 장을 채워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에 잘 싸서 들고 산속 밭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마침 밭에서 내려오는 사람을 마주치게 됐다.

밭 고르신 분이냐며 종이 한 장을 연장들 곁에 두려고 올라가는 참이라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자기는 그 밭 다른 절반의 주인이며 그사이 여러 번 망설이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어려운' 부탁을 하러 내려오는 참이라는 것이었다. 밭을 손으로 갈다 보니 힘이 들어 경운기가 한 번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서원 마당을 지나야 하니 '딱 한 번만' 허락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흔쾌히 얼마든지 그러시라고, 농촌에서 농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했다. 내가 없을 때 대문 여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그도 내가 비닐에 싸서 여전히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글을 읽었다.

마당 귀퉁이 그늘에 나란히 앉아 두유를 한 팩씩 마시며 내가 우선 험한 땅을 정리하고 산길까지 평탄하게 해주신 것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밭은 그간 왜 그렇게 내버려뒀느냐고 물으니, 그사이 어디 멀리 가 있었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술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부턴 그런 거 절대 드시지 마세요" 하며 웃었다. 둘이서 한참 웃었다.

벽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기가 목수라 손재주가 있다며 필요한 일은 뭐든 부탁하면 얼른 해드리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갔다. 며칠 후 작은 경운기가 서원 마당을 지나 산속 밭으로 갔고, 편안히 드나들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자주 드나들기가 못내 미안했는지 기계를 밭에 그냥 세워뒀기에 나도 기계가 상하지 않도록 큰 비닐을 덮어놓았다. 꽂힌 삽, 낫, 톱을 보며 두렵던 내가 이제는 밭에 선 경운기를 보노라면 지킴이를 하나 얻은 양 든든하다.

종이 한 장으로 생각을 한번 바꿈으로써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것이 마냥 기쁘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벽 앞에서 그저 절망했던가. 이제부터라도 이렇게 내가, 내쪽에서, 벽을 조금 허물어보려 한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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