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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영화 ‘프랑스여자’의 배우 김호정 “어느새 나도 경계인…내 불안함, 작품에 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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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살이하는 이방인 여성 심리

모두 공감하나 설명하기 어려운

‘프랑스여자’의 이미지 만들어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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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선 ‘50대 여성 배우’라는 경계
“역할 한정적…마음 열고 기다려”

“참 열정적으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제가 ‘경계인’이 돼 있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혼란스럽던 차에 <프랑스여자> 제의가 들어왔어요. 제가 가진 불안함을 이 작품에 모두 쏟아낸 것 같아요.”

4일 개봉한 영화 <프랑스여자>(감독 김희정)에서 미라를 연기한 배우 김호정은 “미라를 통해 내 삶에도 도움을 받았다”며 이렇게 털어놨다. 그를 지난 3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프랑스 파리와 한국 서울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미라의 모습은 김호정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살던 미라가 오랜만에 한국을 찾으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미라는 젊은 시절 공연예술 아카데미를 다니며 배우의 꿈을 꿨지만, 파리 유학 도중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그곳에 정착했다. 서울에서 20년 전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재회한 미라는 불확실한 기억과 현재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미라를 연기할 사람은 김호정밖에 없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골목을 헤매는 김호정의 모습은 모두가 공감하지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프랑스여자’ 이미지를 완성하는 마침표가 됐다.

영화가 다소 난해하다는 평에 김호정은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많이 다른 것 같다. 관객들도 그럴 것 같다. 첫 번째는 생소한 기분이지만 두 번째 봤을 때는 이야기가 들어오고 세 번째 봤을 때는 디테일이 들어오더라. 네 번째 봤을 때야 비로소 온전히 즐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글로 옮겨놓은 듯 짜임새 있고 재밌다 느꼈다”며 “감독님께 ‘빨리 불어 선생님을 붙여달라’고 했다. 연극적 요소가 많이 섞여있지만, 연극을 오래해서인지 어려움 없이 읽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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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호정은 영화 <프랑스여자>에서 파리와 서울,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여성 미라를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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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은 프랑스에서 산 적도, 불어를 할 줄도 몰랐지만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 여성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한다. “외국에 5박6일 여행 가면 참 즐겁죠. 하지만 몇 달, 몇 년을 살면 달라요. 독일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는데, 차별과 시선에 예민해지고 촉을 굉장히 세우고 지냈던 기억이 나요. 미라의 실제 모델이 된 분을 만나보니 저보다 더 예민해 보이더라고요. 내가 해석을 잘했구나 싶었어요.” 불안하고 예민한 미라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마른 몸을 더 마르게 살도 뺐다.

김호정은 미라를 연기하며 현실과 허구의 상황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미라가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듯이 모든 상황이 실제라고 받아들이고 연기를 했다”며 “미라의 흐릿한 기억마저 어떤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실제로 미라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빛났던 시절이 있지 않나. 미라가 기억을 자꾸 재확인하는 것은 그런 과거를 더듬는 과정으로 봤다”고 했다.

<프랑스여자>가 보여주는 경계인의 정체성은 김호정의 내면에도 자리한다. 1991년 데뷔해 ‘미쳐있었다’ 표현한 연극을 주무대로 영화와 드라마를 수없이 오갔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대중에게 낯설다. 김호정 스스로 자신에 대해 “고정된 이미지가 없고 낯선 얼굴이라 작가주의 감독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한다. 그런 그가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TV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50대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한계는 그를 또 한 번 경계로 몰았다. “매체 연기를 시작하니 여성성 있는 역할이 잘 주어지지 않았어요. 제 또래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 대부분이 엄마 역할이잖아요. 그런 연기적 고민을 많이 하던 중 만난 미라의 이야기가 너무나 내 얘기같이 느껴졌어요.”

김호정은 경계에서 주저앉기보다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쪽을 택했다. 최근 종영한 SBS <하이에나>에서는 권력욕을 가진 로펌 대표 변호사 김민주를 연기했고, 상업영화 <보고타> 촬영을 위해 콜롬비아에 체류하다 현지 코로나19 확산으로 최근 귀국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주도적이진 않겠지만, 늘 열린 마음으로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다양한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연출자들이 드라마 쪽에서도 늘고 있다. 제가 제 정체성을 놓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시나리오만 좋다면 배역의 크기는 상관없어요. 열린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다만 앞으론 TV에서도 좀 더 자연스럽게, 얼굴의 기미를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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