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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인 감독 정진영 & ‘믿보배’ 조진웅…영화 ‘사라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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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력 33년 차 배우 정진영이 영화 ‘사라진 시간’을 통해 신인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번 영화에서 형사 역할로 돌아온 조진웅은 의문의 사건을 수사하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뒤바뀌는 역할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제작 발표회에서 만난 연기 33년 차 신인 감독과 ‘믿고 보는 배우’ 조진웅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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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왜군 장수(‘명량’)부터, 생계형 독립군(‘암살’), 마약 조직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건 형사(‘독전’), 흑금성 작전을 지시하는 안기부 직원(‘공작’). 섬세하고 따뜻한 내면과 더불어 비밀을 지닌 의사(‘완벽한 타인’),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막가파 검사(‘블랙머니’).

수많은 작품 속에서 강렬한 존재감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장르와 캐릭터를 넘나드는 조진웅은 관객들에게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선배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 ‘사라진 시간’에서는 삶이 하루 아침에 뒤바뀐 형사 ‘형구’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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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왕 #변신왕 #믿고 보는 배우

▶조진웅 “단 하루 만에 출연 결정”

Q. 시나리오를 받고 단번에 출연 결정을 했다고 들었다. 한 평범했던 형사의 삶이 뒤바뀌는 이야기다. 내가 알던 진영 선배가 쓴 게 맞나 싶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색다르고 기묘한 이야기를 함께 완성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하루 만에 출연 결정을 했다.

Q. ‘시그널’, ‘독전’에 이어서 또 형사 역을 맡았는데 이전과 다른 점은? 이전 작품에선 굉장히 집요하거나 막무가내 스타일, 정의를 위해 직진하는 형사였다면 이번엔 ‘생활 밀접형’ 형사다. 일상에서 많이 볼 만한, 가족을 많이 생각하는 생활형 형사다.

Q. 정진영 감독과 상의한 것이나 연기할 때 중점을 둔 것이 있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면 한없이 떨어질 것 같아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상황의 공기를 그대로 맞닥뜨려서 그대로 한번 표현해보는 게 어떨까 하면서. 나머지는 감독에게 맡겼다.

Q. 배우가 아닌 감독 정진영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본 소감은? 포지션만 달라졌지 작품을 대하는 본질에 있어선 전혀 변함이 없었다. 본인이 감독으로서 키를 갖고 있는데, 배우로서 마주할 때도 그 키는 있었다. 배우가 아닌 감독 정진영은 아이처럼 순수하고 행복해 보였다. 현장을 열정적으로 진두지휘했고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배우 출신 감독을 몇분 만났었는데 정진영 감독님은 작품의 본질이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많은 배우들에게 귀감이 됐다. 특히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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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배우 출신 감독과 함께 일하는 느낌은? 남자 분들과 작업하는 게 내 팔자인 것 같다(웃음). 배우의 속마음을 아는 감독이기 때문에 내가 어디가 가려운지 너무 잘 안다. 이 (코로나)시국엔 더하지 않나. 굉장히 관록 있고 많은 데이터, 많은 현장 경험이 쌓여 있어서 현장을 이해하는 장이 됐다.

Q. 본인도 단편 영화 연출을 했지 않나. 나중에 상업 영화를 만든다면 반대로 정진영 씨를 캐스팅할 생각이 있나?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진영 선배에게는 우리 시대의 배우라는 본질이 있다. 여러 작품에서 선배님의 연기를 보며 자라왔던 후배로서 한 장면 속에 함께 들어가 있으면 시너지가 더 날 것 같다.

Q. 극장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배우의 입장에서 코로나19가 만들어낸 변화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사라진 시간’의 경쟁력은? 연극과 영화의 본질은 예술 활동으로 인간의 고된 일상을 보상해주는 것이다. 그 필름메이커들이 바로 우리다. 인류가 있는 한 계속 존재해왔기 때문에 코로나19 따위에 무릎 꿇을 수 없다. 거리 두기로 많은 관객은 들 수 없지만 우리가 계속 여러분들을 치유할 거란 것은 변함이 없다. 많은 대중예술을 잘 만드는 것이 코로나19를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Q.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주 미스터리하고 미묘한 맛의 영화다.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형구’가 느끼는 심리적인 다이내믹함이 상당하다. 관객들 또한 이를 함께 목도하고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실까 불안하고 떨리는 건 배우인 나도 마찬가지다.(정 감독 인터뷰를 듣고) 이렇게 자꾸 앓는 소리를 하신다(웃음). 그런데 이 앓는 소리 때문에 영화가 충실하게 만들어진다. 지금 이 시기, 자신의 삶에 대한 블랙코미디에 같은 시선을 느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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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뇌섹남 #천만영화 4편

▶신인 감독이 된 33년 차 배우, 정진영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한 이래 연극, 영화, 드라마는 물론, 시사 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MC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온 정진영은 영화 ‘왕의 남자’, ‘님은 먼곳에’, ‘평양성’ 등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7번 방의 선물’, ‘국제시장’, ‘택시운전사’ 같은 천만 영화부터 ‘또 하나의 약속’,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등 예술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갖춘 영화까지 전방위적 활약을 펼친 33년차 배우다. 그런 그가 신인 감독으로 메가폰을 들었다.

Q. 어떤 갈증 때문에 메가폰을 잡은 건가? 갈증이라기보다는 용기를 낸 것 같다. ‘만들었다가 망신 당하면 어떡하지, 저 사람이 왜 괜히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해서…’ 이런 얘기 듣는 걸 겁을 냈던 것 같다. 지금도 겁이 난다. 그런데, 그거 겁을 내다가는 내 인생이 그냥 지나가겠구나 생각했다. ‘비판이나 비난은 내가 감수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자’라는 뻔뻔함, 용기를 내게 됐다. 감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게 4년 전인데 이전의 2개 시나리오는 버렸고 이번이 새로 쓴 거다.

Q. 오랫동안 영화 연출을 꿈꿔왔는데. 감독은 17살 때부터 막연하게 꿈이었다. 대학 들어가서 배우가 된 거고. 30대 초반에 연출을 한 편 하기는 했지만 난 연출할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연관된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50살이 넘어가면서 용기를 냈다. 내가 담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용기가 나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로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내게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쓸까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열 일곱 살 꿈을 쉰 일곱에 이루게 됐다. 굉장히 긴장된다. 어젯밤에 잠도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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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장에서 고충이 있었다면? 시나리오 작업하고 촬영 준비할 때는 재미있고 행복했다. 변수가 생기면 바로 고치고 하면서, 하루에 평균 3시간 밖에 못 잤지만 재미있었다. 후반 작업 할 때는 힘들었다. 아쉬운 점이 보이니까. 지나고 보니 내가 이걸 어떻게 시작할 마음을 먹었나 싶더라.

Q. 연출을 준비하며 주변의 감독들과 상의하며 조언받은 게 있나? 일부러 안 들었다(웃음). 내 고집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도 많이 돌리지 않았다. 조언을 많이 들으면 내 것이 아니게 될 것 같았다. 이준익 감독 등 몇몇 절친한 사람들에게만 줬는데 많은 격려를 해줬다. “야 이게 뭐냐”라고 욕 먹을 먹을 줄 알았는데. 그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그런데 그 조언은 촬영할 땐 도움이 안된다. 난 아무런 영화적 자산 없이 뛰어들었으니까. 면허도 없는 사람에게 운전 팁은 별 도움이 안되지 않나. 작업이 끝나고 나니 그제야 좀 알겠더라.

Q. 배우로서의 경험이 연출에 도움이 됐나? 배우들은 원체 잘 준비해온다. 훌륭한 전문가들이고.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가 준비해온 것을 충분히 믿고 가면 된다. 배우들은 굉장히 예민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감정 전달 시 뭔가 삐끗하면 장애물이 된다. 그런 걸 만들지 않으려 했다.

Q. ‘사라진 시간’은 평범한 삶이 한번에 뒤바뀌는 영화다. 연출 의도는? 처음부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써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다. 감독으로 오래 수련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해보자고 생각했다. 형구는 사고 당한 부부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자신도 의문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사는 게 뭔가, 나라는 존재는 뭔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삶의 정체성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을 미스터리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 관객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고 싶었다. 익숙한 내러티브와는 다른 식으로.

Q.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조진웅을 그리며 썼다고 들었다. 특유의 순발력과 열정, 매력이 넘치는 배우다. 현실감 있는 연기로 영화의 생생한 리얼리티를 더해준다. 평소 작품을 통해 봐왔던 조진웅의 액션이나 말투 등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구상했다. 탈고하자마자 책을 보내면서 ‘빨리 거절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엄청 바쁜 배우니까 그쪽이 맘이 편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하겠다고 하니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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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진웅은 어떤 배우인가? 척하면 척. 6분 이상 되는 원테이크 신도 거뜬히 소화해내는 배우. 굉장히 복잡한 형구의 심리가 묘사된 음주 신이 있었는데 원래 계획했던 건 1분30초 정도였다. 술이 아니라 보리차긴 했지만 연속으로 6분 넘게 찍었다. 연극할 때처럼 오랜만에 신명이 느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무아지경처럼 되었다.

Q. 배우로서 반장 역도 하고 시사 교양 MC도 했다. ‘사라진 시간’ 주인공이 형사인데 이런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배우가 한 캐릭터를 맡으면 영화와 캐릭터 속의 인생을 살면서 그걸로 그 인물을 경험한다. 미묘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 형구는 너무나 딱 그 인물이었다. 내가 경험한 형사라는 캐릭터와 진웅 씨가 나에게 다가온 마음이 자연스럽게 형구라는 인물로 표현된 것 같다.

Q.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직접 쓰고, 실제로 촬영을 하고, 또 개봉해서 관객들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마치 꿈 같다. 이제 관객과 언론, 주변의 평가라는 가장 무서운 과정이 남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와 사이즈, 독립영화 스타일로 시작하려고 했다. 조진웅 씨가 합류하면서는 볼륨이 커졌지만. 관객들의 뒤꼭지에 남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 자리에서 호기심이 바로 해소되는 게 아니라.

Q. 관객들에게 마지막 한마디? 늙다리 초보 감독의 영화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한다. 내가 할 일은 다 끝내놔서 담담한데 떨린다. 인생의 이야기를 하되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선입견 없이 계속 변모해가는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투박한 이야기 속에 인생을 대하는 한 남자의 진정성과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에이스무비네트웍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32호 (20.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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