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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인도승려와 병든 모친의 전설 깃든 화엄사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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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의 자취-41] 서양에서 불길한 숫자를 상징하는 '13'이 불교에서는 완전성을 의미한다. 평면을 뜻하는 8방에 하늘과 땅을 더하면 10방 세계, 즉 온 우주가 된다. 여기에 시간적 세상인 과거, 현재, 미래 3세를 합치면 13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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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10층 높이 정혜사지 13층 석탑(국보 제40호). 1911년 도굴로 해체됐다가 복원됐다. 도굴범들이 땅에 버려둔 탑재를 되돌려 놓지 못해 10층까지만 새로 쌓았다. 조선고적도보 4권(1916).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이 같은 사상이 반영된 13층 석탑이 있다. 바로 국보 제40호 정혜사지 13층 석탑(높이 5.9m)다. 비대한 1층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행태로 석탑 조성 방식이 전형적 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파격적 실험성이 돋보이면서도 높은 완성도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탑이다. 2019년 경주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 석탑을 찾아 그 존재 가치가 재차 부각되기도 했다.

정혜사는 뜻밖에도 동방 5현 중 한 명인 회재 이언적(1491∼1553)과 인연이 깊다. 회재는 젊은 시절 정혜사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으며 말년에 이 절 바로 밑에 독락당을 짓고 기거했다. 정혜사에서 800m 하류에는 회재 사당인 옥산서원이 있다. 옥산서원에는 국보 제322-1호 삼국사기가 보관돼 있다.

정혜사와 13층 석탑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다만 1933년 최준이 동경잡지를 보완해 발간한 동경통지에 "선덕왕(신라 제37대 왕·재위 780∼785) 원년 당나라 첨의사 백우경이 모함을 피해 신라에 귀화해 자옥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영월당과 만세암을 세웠다. 이에 왕이 거둥했으며 친히 만세암을 정혜사라 고쳤다"고 적혀 있다. 백우경은 중국 시성 백거이의 사촌인 인물로 귀화 후 신라 조정에서 벼슬도 했다. 수원 백씨는 그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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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정혜사지 13층 석탑 전경. 애초 13층을 회복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사찰은 회재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이 공부방으로 쓰는 등 조선시대에도 잘 보존됐지만 1834년 발생한 화재를 끝으로 탑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 폐사되고 만다. 탑 역시 시련을 겪었다. 1911년 도굴범들이 부장품을 훔치기 위해 탑을 해체했는데 도중에 발각돼 도굴 위기는 모면하지만 해체 상태로 방치됐다. 이후 다시 복원됐으나 도둑들이 버려놓은 탑재를 원상복구하지 못해 10층 탑 모습으로 남았다. 1916년 발간된 조선고적도보 4권에도 10층 탑 모습이 실려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19년 유리건판 사진 자료에는 13층으로 회복돼 있다. 그사이 탑을 재차 쌓은 것이다. 그러나 탑 상부는 영영 잃어버려 현재 탑에는 상륜부 없이 노반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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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한국 이형 석탑으로 쌍벽을 이루는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국보 제35호). 효심 깊은 인도 승려와 병든 어머니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사진 문화재청.


부처 사리를 봉안하는 묘인 탑은 나무, 금속, 벽돌, 석재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화강암이 풍부해 석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석탑이 성행했다. 전형적인 석탑은 불국사 3층 석탑(국보 제21호), 경주 황복사지 삼층 석탑(국보 제37호), 경주 고선사지 삼층 석탑(국보 제38호),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 석탑(국보 제112호), 경주 나원리 오층 석탑(국보 제39호) 등에서 볼 수 있듯 4각형 평면에 기단, 중층(3층 또는 5층 높이)의 몸돌·지붕, 상륜부 구조를 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세기 후반~8세기 중엽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 구조에서 목조건축을 모방하는 백제 조탑 기술이 반영된 것으로 백제 기술이 수용된 통일신라 때 형성돼 오랜 기간 한국 석탑의 주류를 이뤘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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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함이 강조된 남원 실상사 백장암 3층 석탑(국보 제10호). 사진 문화재청.


하지만 신라 성대인 8세기 중엽 이후에 오면 양상이 달라진다. 귀족 문화가 절정을 맞고 사치와 향락풍조가 극에 달하면서 문화 전반에 걸쳐 화려함과 장식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석탑에서도 종전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구조의 '이형(異形) 석탑'이 출현하게 된다. 이형 석탑은 크게 3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장식적인 석탑으로 전형적인 방형 중층의 기본형을 하고 있지만 기단과 탑신부 각 면에 천인상, 안상(눈 모양 장식), 팔부신중(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 십이지신상, 사방불(동서남북으로 새긴 부처), 보살상, 인왕상(사찰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호신) 등 여러 상을 조각해 표면 장식이 화려한 게 특징이다. 이 부류의 탑으로 남원 실상사 백장암 3층 석탑(국보 제10호), 산청 범학리 3층 석탑(국보 제105호), 양양 진전사지 3층 석탑(국보 제122호) 등이 꼽힌다.

둘째는 탑 구조나 건축 방법이 전형적 양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외관상으로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석탑이다. 형상과 층수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한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정혜사지 13층 석탑(국보 제40호),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국보 제35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등이 여기에 속한다.

탑신부는 방형 중층의 전형을 보이지만 기단부가 원형의 불상대좌(받침대)를 형상화한 탑도 이형탑의 한 종류다. 철원 도피안사 3층 석탑(보물 제223호)이 대표적이다.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국보 제35호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은 신라시대 사자탑으로는 유일하며 다보탑과 함께 한국 이형 석탑의 쌍벽을 이루는 우수한 작품이다. 화엄사는 진흥왕 5년(544) 인도 승려 연기조사(생몰년 미상)가 세운 절로 알려져 있다. 연기조사는 제자 3000명을 길러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됐다. 화엄사에는 호남 제일의 사찰답게 각황전(국보 제67호),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4사자 3층 석탑 등 국보 3점과 보물 8점이 있다.

이 가운데 4사자 3층 석탑이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위층 기단에 암수 사자 네 마리를 각 모퉁이에 기둥 삼아 세워놓았다. 사자는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탑은 연기조사의 효행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연기조사는 화엄경을 가지고 비구니인 모친과 함께 화엄사가 자리한 노고단 황둔골에 들어왔다. 조사는 마을 사람들 질병을 치유하고 불법을 가르치면서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신도가 된 마을 사람들은 조사에게 감동받아 화엄사를 짓는 것도 도왔다.

높이 6.7m인 석탑은 마주 보고 있는 높이 2.8m짜리 석등과 한 쌍이다. 석탑에는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 합장한 채 서 있는 비구니상이 있다. 이 비구니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해온다. 석탑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두 12명의 천인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로 옆 석등에는 탑을 향해 꿇어 앉아 있는 스님상이 표현돼 있다.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했다. 두 석조물에는 조사의 효심과 불심이 혼연일체가 돼 스며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 6세기 화엄사 창건 당시 석탑도 같이 조성됐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후대 사람들이 연기조사 전설을 담아 탑을 지은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장식 석탑에서는 국보 제10호 남원 실상사 백장암 3층 석탑이 제일 낫다.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위치한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 홍척(생몰년 미상)이 당나라 유학을 다녀와 건립했다. 백장암은 실상사에 딸린 암자로 실상사에서 북쪽으로 3㎞ 남짓 떨어져 있다. 백장암 3층 석탑은 높이 5m로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보살상, 신장상, 천인좌상, 삼존상, 연꽃무늬 등 갖가지 모습들의 화려한 조각으로 가득하다. 구조도 자유롭다.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 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다.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 수법에서 벗어나 층을 이루지 않고 한 단으로 처리돼 있다. 날렵함이 부각된 매우 염려(艶麗)한 석탑이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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