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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코로나 딛고 재오픈 준비하다 날벼락… 가게 침입 알람엔 ‘올 것 왔다’ 체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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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규 펜실베이니아 뷰티협회장 / “현재까지 최소 35곳 243억 피해 / 보호용 합판 떼내고 새벽 약탈도 / 신고 소용없어… 주저앉고 싶어” / 외교부 집계 한인상점 피해 99건

“코로나19 탓에 두 달 반 문 닫은 가게를 이번 금요일(5일)에 다시 열려고 준비한 가발 등 미용용품을 시위대 등에 전부 털렸습니다.”

미국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흑인 사망사건 규탄 시위 여파가 미 한인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나상규(64·사진) 펜실베이니아 뷰티서플라이협회장은 2일(현지시간)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필라델피아 회원사들의 피해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세계일보

약탈로 폐허된 한인상점 2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의 한인이 운영하는 뷰티서플라이상점가 시위대의 약탈로 폐허로 변해 있다. 펜실베이니아 뷰티서플라이협회 제공


7만 필라델피아 한인 사회가 이번 시위로 직격탄을 맞을 줄 몰랐다는 그는 “시위가 일기 전 코로나19 때문에 필라델피아 내 100여개 한인 뷰티서플라이업체들이 두 달 보름 동안 문을 닫았다”며 “5일 재오픈을 기다리던 업체 중 최소 35곳이 약탈당했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의 한인 점포 50여곳이 피해를 봤으니 뷰티서플라이업체가 집중 약탈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일부러 한인 업체를 노리지는 않은 것 같고 고가의 생필품이 많아서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뷰티서플라이업체는 흑인 여성의 필수품인 가발과 미용용품, 잡화를 파는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은 300만달러어치 물품을 털렸다”며 “내일 아침이면 피해 업체가 더 늘겠지만 현재까지 최소 2000만달러(약 243억원)는 피해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나 회장은 4∼5일 전부터 대낮부터 시위대가 떼로 몰려와 업체를 가리지 않고 약탈해 갔다면서 “최근 이틀은 야간에 5∼10명씩 몰려다니며 가려놓은 합판을 떼어내고 침입해 물건을 박스째 들고 갔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나상규 펜실베이니아 뷰티협회장


매일 회원사 피해 상황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감시 카메라와 연결된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면 ‘이제 내 가게구나’ 하고 한숨 쉬며 경찰에 신고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고, 그렇다고 차를 타고 가게에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유독 한인사회 치안을 등한시한다기보다 시위와 약탈이 너무 광범위하게 자행돼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통행금지가 발령된 새벽에 큰 망치나 전기톱을 들고 와 철제문을 부수고 침입해 약탈하는 사례도 여럿 보고됐다. 그는 아이와 함께 약탈에 나선 흑인들도 있었다면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혀를 찼다.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은 상황이라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석 달가량 문을 닫아 임대료 부담에 허덕이고, 이제 막 장사를 재개하려는데 시위대 약탈로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다. 나 협회장은 “대부분 코로나19로 자금 사정이 안 좋아 비싼 보험료를 피하려고 보장범위 30% 정도의 보험을 들었다”며 “전체 피해상황이 집계되면 집단으로 보상요구를 해볼 생각이지만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뷰티서플라이업계는 대개 미국에 오래전 정착한 60∼70대가 주류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로 노후생활이 위협받는 업주가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필라델피아 한인 사회에서는 뷰티서플라이업체 외에 약국과 보석상, 휴대전화업체 등 매장에 돈이 되는 물건이 많은 가게들이 주로 약탈대상이 됐다. 나 회장은 “흑인 인권 개선을 위한 시위는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가게나 약탈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시위 사태로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한인 상점 재산 피해는 모두 99건으로, 전날보다 20건 증가했다고 외교부가 3일 밝혔다. 아직 인명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홍주형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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