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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보란듯 유조선 5척 제재망 뚫었다···다시 불붙는 미·이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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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휘발유 수출로 美 자극

10월로 다가온 '무기금수 해제'

트럼프 재선 가도에 악재로 작용

美와 대립하는 중·러에 꽃놀이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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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휘발유를 선적한 이란 유조선이 베네수엘라 엘팔리토 정유시설에 도착하자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인 PDVSA의 직원이 이란 국기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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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미국의 제재망을 뚫고 석유제품 수출을 시작한 데 이어, 또 다른 뇌관인 무기금수 해제 기한이 점차 가까워지면서다. 여기에 극한으로 치닫는 미ㆍ중 갈등과 에너지 시장에서의 러시아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국제무대에서 양국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동병상련 베네수엘라와 손잡아



“라마단(이슬람의 금식월)이 끝나자마자 양국의 연대를 나타내는 유조선이 도착한다. 제국이 힘으로 지배하려는 가운데 형제애만이 우리를 구하리라. 이란에 감사를….”

지난달 24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튿날 북부 엘팔리토 정유시설에 도착하는 이란의 유조선을 환영하는 메시지였다.

이란은 총 150만 배럴의 휘발유를 5척의 유조선에 나눠 실어 베네수엘라에 보낼 계획이다. 그중 첫 유조선이 지난달 25일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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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유조선 항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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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보내는 휘발유는 베네수엘라의 최대 2개월 치 소비량에 해당한다. 극심한 물자난에 시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 입장에선 단비와 같은 존재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휘발유 1L 가격은 3~5달러, 이는 노동자의 한 달 최저임금(약 3달러)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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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다 떨어져 할 일이 없어진 직원이 주유대 옆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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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산유국인데도 자국에서 사용할 휘발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전임 우고 차베스 정권과 마두로 정권을 거치면서 국유화한 석유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의 국영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가 휘발유와 원유를 맞바꾸는 거래를 했지만, 이마저도 미국이 로스네프트를 제재하면서 멈춰 서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이란이 손을 내민 것이다.



◇금괴 9t으로 거래대금 치렀나



하지만 수송작전은 간단치 않았다. 지난 3월 중순 이란 유조선이 출항하자 미국은 곧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이후 미 해군은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로 가는 길목인 카리브해에 함정과 초계기 등을 배치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지난달 17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미국의 행동을 ‘해적질’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미국은 실제로 이란 유조선을 멈춰 세우는 강공은 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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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휘발유 수송작전에 나선 이란 유조선 포춘호가 베네수엘라 북부 엘팔리토 정유시설 부두에 정박해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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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이번 거래 규모는 약 4550만 달러(약 558억원)로 추산된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가 급락으로 경제난이 심각해진 이란 입장에선 중요한 수입로가 열린 셈이다.

재정 파탄인 베네수엘라가 이런 거액을 지불한 경위를 놓고도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마두로 정권의 비밀자금인 금괴 9t가량을 건넸을 것으로 추정한다. 일각에선 커피ㆍ코코아 등과 물물교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베네수엘라는 ”달러로 지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에 구멍이 뚫린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美 '무기금수 연장'에 전력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다. 오는 10월 18일이 기한인 이란의 무기금수 조치 해제 문제다.

2015년 이란과 미ㆍ영ㆍ불ㆍ독ㆍ러ㆍ중 등 6개국 및 유럽연합(EU)은 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맺으면서 단서를 달았다. 다른 경제제재와 달리 무기금수는 5년 뒤에 해제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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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최정예 군사 조직인 혁명수비대가 지난달 22일 군사위성 '누르(빛)'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면서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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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한이 다가오자 미국은 연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이란담당 특별대표는 지난달 13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금수 조치가 해제될 경우) 세계 최대의 테러지원국이 전투기ㆍ군함ㆍ잠수함ㆍ미사일 등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된다”고 극도의 경계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외교적으로 거부권을 방해받는다면, 미국에는 다른 수단으로 무기금수를 연장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란을 후견하는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새로운 결의안 도출이 어려울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은 핵합의에 규정된 ‘분쟁해결 메커니즘(DRM)’을 우회 통로로 이용할 계획이다. DRM은 합의 당사국 중 한 국가라도 ‘합의 위반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발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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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합의 ‘분쟁해결 매커니즘(DRM)’.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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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핵합의에서 이탈한 뒤 이란이 단계적으로 우라늄 농축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자, 영ㆍ불ㆍ독 3개국이 지난 1월 DRM 발동을 선언했다.

DRM이 발동되면 당사국의 고위급 회담, 외무장관 협의 등을 35일 이상 진행하게 된다. 이후 해결되지 않으면 안보리로 안건이 넘어온다. 이 경우 30일 이내에 제재 해제 상태를 지속한다는 결의를 채택하지 않으면 이란의 무기금수 조치가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중ㆍ러 "핵합의 탈퇴, 권리없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노림수에 중국과 러시아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이 이미 핵합의를 탈퇴한 이상 DRM을 발동할 명분도 권리도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 정권은 초조하다. 11월 미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권의 핵심 외교정책인 ‘대이란 봉쇄’가 좌절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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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 둘러싼 주요 흐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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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선 좋은 패가 굴러들어온 셈이다. 또 양국이 이란에 무기를 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다는 점에서도 호재다.

여러모로 이란 이슈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풀이가 나오는 이유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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