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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싹트는 SF연극… 소설·영화와 또 다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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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 작가 김보영 동명 대표작 무대로 옮겨 / 무한한 우주와 기다림의 의미에 주목 / 소리·조명 등 다양한 연출적 실험 시도 / '무하유지향' / 뇌사 남편 살리려는 뇌과학자 주인공 / 인간의 잠재력·진정한 사랑 등 메시지 / 과학·인간 미래 상상하는 SF 로맨스 / '팜' / 유전자 재조합으로 태어난 아이 그려 / 평생 남들을 위해 땅 역할만 하다 죽어 / "사람의 보편적 삶의 종적 전달이 의도"

과학적 상상에 기반을 둔 SF(사이언스픽션)가 소설·영화에서 연극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척박한 풍토 때문에 ‘SF 문화의 불모지’라는 아쉬운 소리도 과거에는 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젊은 SF 작가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한국 고유의 SF문학이 먼저 자리를 잡고 여기에서 싹튼 SF연극도 연달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광속 여행시대의 사랑,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강고한 세계 SF 문단에 가장 먼저 이름을 크게 알린 우리나라 SF 작가는 김보영이다. 한국 SF 작가 중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웹진 ‘클락스월드 매거진’에 단편을 실었고 미국 최대 출판 그룹 하퍼콜린스와 출간 계약을 맺었다. 최근에는 SF 3부작 ‘스텔라 오디세이’도 출간했다.

연극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두 남녀의 편지로 구성된 서간문 형식인 김보영의 동명 대표작을 무대에 옮긴 작품이다. 광속으로 성간 여행이 가능해진 시대에 주인공 약혼자는 다른 별로 이주하는 가족을 배웅하기 위해 지구 시간으로 9년이 걸리는 알파 센타우리에 다녀와야 한다. 주인공은 9년의 기다림을 두 달로 단축하기 위해 다시 상대성의 원리에 따라 태양계를 광속으로 운행하는 ‘기다림의 배’에 올라탄다. 그러나 항해하는 동안 작은 사고가 이어지면서 기다림의 시간은 걷잡을 수 없는 크기로 흘러가고 지구에도 큰 변화가 닥쳐온다. 이 와중에 주인공이 약혼자와 소식을 전할 유일한 통로는 오직 편지뿐이다. 연극은 소설의 주제인 무한한 우주와 한 사람의 생애를 훌쩍 뛰어넘는 긴 시간과 기다림의 의미에 주목한다.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해 우주와 인류, 고독과 기다림을 키워드로 시공간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전인철은 2017년 일본 SF 소설가 호시 신이치의 소설을 각색·연출한 ‘나는 살인자입니다’로 초연 당시 관객들의 호평과 함께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에도 창작진과 협업으로 소리·조명·무대가 어우러지는 다양한 연출적 실험을 시도한다.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6월 4일부터 7일까지.

◆인공지능에 연결된 뇌, ‘무하유지향’

세계일보

상상력을 극한으로 끌어오린 SF연극이 무대에 연이어 오르고 있다. 인간 뇌와 인공지능의 결합을 다룬 연극 ‘무하유지향’. 극단 제공


연극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주인공은 의식불명에 빠진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뇌과학자 연우다. 남편 민훈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뇌 질환을 치료하는 실험을 하다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됐다. 연우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인공지능 ‘제니’를 남편 뇌에 이식한다.

가족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 인간의 잠재력, 진정한 사랑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과학과 인간의 미래를 상상하는 SF 로맨스다. 극단 ‘가청주파’의 올해 첫 번째 공연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융합콘텐츠 지원사업에 선정돼 무대에 오른다. 극작가 전지욱이 대본을 쓰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제목은 장자 철학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 그 무엇도 없는 곳인데 극 전개상 뇌, 또는 인간의 의식이자 ‘유토피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귀웅 연출은 언론 인터뷰에서 “뇌 과학자가 뇌사 상태에 빠진 자신의 남편을 깨우기 위해 인공지능을 뇌에 이식하고 남편의 의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며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는 의미로 ‘무하유지향’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됐다. 뇌 과학자들이 인공지능을 가지고 인간의 뇌를 실험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의식이란 게 과연 무엇이고 인공지능하고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재미있게 풀어가는 SF 연극”이라고 설명했다. 무대는 실리콘 스크린, 프런트 스크린을 통해 SF 분위기를 연출하며 스토리와 인물의 심리를 대변한다. 서울 광화문아트홀에서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유전자 재조합 인간 ‘팜’

세계일보

유전자재조합 인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연극 ‘팜’의 한 장면. 극단 제공


연극 ‘팜’은 유전자 재조합으로 태어나 평생 남을 위한 땅(farm) 역할을 하다 외롭게 죽어가는 한 아이 이야기다. SF적 상상에서 등장할 법한 우스꽝스러운 인물과 엉뚱한 순간들이 어지럽게 펼쳐지는 동안 아이는 외롭게 소외된 채 늙어가고 마침내 죽음으로 평안을 찾는다. 일본 극작가 겸 연출가 마쓰이 슈의 희곡을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김정 연출이 무대화했다. 일본 최대 국제공연예술제인 ‘페스티벌 도쿄’ 협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초연했다. 마쓰이 슈는 “유전자 재조합으로 디자인된 아기가 작품 발상의 시초였다”며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 과연 부모는 아이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작품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김정 연출은 “SF적인 특별한 소재에서 출발해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삶의 종적을 보여주는 것이 이 공연의 가장 중요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재영 안무가가 창작진으로 참여해 일상을 쪼개 놓은 듯한 독특한 규칙을 가진 몸짓을 무대 위에 펼친다. ‘프로젝트 내친김에’는 2014년 결성된 젊은 연극인 집단으로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무대언어를 찾아가는 공연팀이다.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6월5일부터 14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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