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0482186 0022020060160482186 04 0403001 6.1.12-RELEASE 2 중앙일보 60518933 true true true false 1590997925000 1591014919000

"흑인 1004명 경찰 손에 죽었다"···트럼프에 폭발한 워싱턴

글자크기

'흑인 살해' 항의 시위 3일째 워싱턴 르포

경찰, 최루탄·고무탄 쏘며 백악관 진출 막아

인종차별에 반트럼프, 코로나 실직까지 겹쳐

통금령에도 방화·폭력 사태, 주 방위군 투입


중앙일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근처에서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길속에 던져넣고 있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과 관련한 시위가 워싱턴에서 사흘째 열렸다.[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서 상황이 악화했습니다. 원래도 나빴는데, 더 나빠진 거죠. 이젠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서 만난 백인 여성 라일리 브라운(19)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경찰의 인종 차별이 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이라고 쓴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지난해 경찰에 의해 사망한 흑인들 이름을 빼곡히 적어 사람 형상을 그렸다. “2019년 한 해에만 흑인 1004명이 경찰 손에 죽었다”고 했다.

중앙일보

지난달 31일 시위에 참가한 라일리 브라운은 2019년 한 해 경찰에 의해 사망한 흑인 1004명의 이름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박현영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흑인 혼혈인 엘리시아 베이싱어(18)는 "흑인인 내 아버지는 경찰한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마음 놓고 집 앞 현관에 앉아 있지도 못한다”면서 “얼마 전 경찰이 수갑을 채울 때 팔을 등 뒤로 너무 당겨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울먹였다.

중앙일보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쏜 고무탄. [박현영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4번가와 H스트리트 근처에서 대화하던 우리에게 경찰이 쏜 고무탄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옆에 있던 청년 쉐인 케인(20)의 벨트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시위대와 대치하던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 폭발음과 연기를 뿜는 섬광탄(flash bang)을 계속 터뜨렸다. 최루탄과 페퍼 스프레이를 썼다. 놀라 뒷걸음질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백악관 반대 방향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케이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시민을 죽이는 짓을 이젠 멈춰야 한다”면서 “경찰의 군대화가 지나치다. 이게 독재가 아니고 뭐냐”고 말했다. 그는 경찰 최루탄 발사에 대비해 1갤런(3.78L)짜리 우유 통과 생수를 챙겨 나왔다.

백인 경찰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워싱턴에서 사흘째 이어졌다. 시위대는 백악관 북측 라파예트 광장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북쪽에 집결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정의 없이는 평화 없다(No justice, no peace)” 같은 구호를 외쳤다.

중앙일보

지난달 31일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양손을 올리고 "손 들었으니 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손들었으니 쏘지 마라(Hands up, don't‘ shoot)”를, 플로이드가 남긴 마지막 말인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를 제창했다. 경찰 만행과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표시로 한쪽 무릎을 꿇은 사람들도 곳곳에 보였다.

흑인 여성 미아 윌리엄스(26)는 "나와 엄마와 할머니는 아버지와 오빠가 사고를 당할까 늘 불안해하며 지낸다"면서 "미래의 내 아들딸이 언제 경찰에 붙잡혀가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 미국을 문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시위대가 30일(현지시간) 백악관 앞 연방 보훈청 청사 유리창을 깨고 스프레이 페인트로 BLM이라고 적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의 약자다. [박현영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백악관으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이 대치하던 오후 7시 50분,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시장이 통행금지령을 내렸다는 긴급 문자메시지가 울렸다. 이날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워싱턴 시내 통행이 금지됐다. 정부청사 유리창이 깨지고 상점이 불타는 등 폭력시위가 일어나도 통행금지는 안 했는데, 이날 시위가 격화할 가능성을 보이자 급히 발동한 것이다.

전날에도 시위에 참여했다는 랠프(32ㆍ가명)는 “어제보다 오늘 경찰 병력이 확 늘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주 방위군 1700명이 투입됐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해가 진 뒤 일부 시위대는 시설물에 불을 질렀다. 밤 10시께 백악관 건너편 세인트존 교회 지하에 불을 지르고 성조기를 찢어 불길에 던졌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교회 벽면에는“건너편에 악마가 살고 있다”라고 적었다. 이날 새벽 내내 경찰과 소방차 사이렌, 헬리콥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리오(25ㆍ가명)는 불을 지르는 이유를 “이 나라 시스템이 너무 망가져서 도저히 고쳐 쓸 수 없을 정도라서 차라리 모든 걸 불태워 없애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악관을 가리키며 “이 나라는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이 주축이며, 진보주의자와 개혁주의자가 더해졌지만, 여전히 고의적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만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 특히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만과 심리적 박탈감이 쌓였는데 낙타 등에 지푸라기 얹듯(낙타 등에 마지막 지푸라기를 얹자 낙타가 결국 주저앉았다는 표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터졌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워싱턴 시내 한 햄버거 매장이 시위대의 난입과 약탈을 막기 위해 나무 보드를 두르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위대 난입과 약탈을 우려한 시내 상점들은 유리창 밖에 나무 보호판을 대거나 ‘흑인이 운영하는 상점’이라는 표시를 내걸기도 했다. 14번가에 있는 햄버거 전문점 파이브가이즈, 조지타운에 있는 애플 매장은 서둘러 매장 전체를 나무 보드로 둘렀다.

중앙일보

미국 워싱턴 시내 음식점 벤스칠리보울은 '흑인 소유' 상점 표시를 내걸었다. [박현영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U스트리트에 있는 핫도그 전문점 벤스칠리볼은 ‘흑인 소유(Black owned)’ 표시를 입구에 내걸었다.

이날 워싱턴을 비롯해 40개 도시가 통행금지령을 내렸고, 15개 주와 워싱턴에 주 방위군 5000명이 투입됐다. 2000명은 대기 중이다.

중앙일보

시위대가 백악관 근처 14번가와 H스트리트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 고무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밀어냈다. [박현영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워싱턴 시내 자택대기 명령이 풀린 지난달 29일 워싱턴에서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시위가 시작됐다. 석 달 가까이 집에서 갇혀 생활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로 인해 확연히 드러난 빈부와 인종 간 격차, 실직에 따른 불안감을 토로했다고 워싱턴 지역방송이 전했다.

이날 수천 명이 모였으나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스티븐 고틀립 전 미 식품의약국(FDA) 국장과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 접촉하면 감염 증가는 분명히 일어난다”며 환자 급증을 우려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