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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남양유업 '갑질 과징금' 119억 깎고, 상생 호소 7년…반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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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박준식 기자] [편집자주] [공정위 리포트] 공정거래위원회가 관여하는 기업집단과 시장거래 사건의 전후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공정위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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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의 믹스커피인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 사진=남양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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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계륵(鷄肋)으로 여기는 기업이다. 대리점주에 물량 밀어내기 갑질과 폭언으로 2013년 전국민 공분을 샀던 기업이 2017년 다시 논란에 휩싸였고 최근에도 반성 기미가 없이 불법 이슈를 만들고 있어서다.

공정위는 그러나 채찍보다는 당근을 제시해 왔다. 동의의결이라는 사실상 면죄부를 준 상태다. 위법 혐의가 있지만 기업이 자진해 문제를 시정하거나 피해구제를 한다는 약속을 전제로 당국 조사 절차를 일단 유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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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일단 과징금이나 고발로 압박을 주기보다는 자발적인 상생을 권하고 있다. 남양유업이 대리점과 상생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이를 믿어보기로 한 셈이다. 여기에 동의의결이 대리점들 입장에서는 신속히 피해구제를 받는 효과가 있어 실효적이란 판단도 더해졌다.

공정위 내부에선 한국 유가공업계를 대표하는 56년 업력 회사를 ‘갑질기업’으로 낙인찍기엔 부담스럽다는 기류도 보인다. 하지만 최근 남양유업은 이런 기대를 다시 져버렸다. 경쟁사 비방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정부로서는 실망감이 배가됐고, 그간 내렸던 면죄부마저 특혜처럼 보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남양유업법 = 대리점 갑질 제재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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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남양유업 본사 사옥 /사진제공=남양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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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남양유업법이란 게 있다. 정식 명칭은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인데, 대리점이 본사(공급업체)와 대등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2013년 남양의 물량 밀어내기 사태가 발단이 돼 만들어진 법률이라 이런 별칭이 붙었다.

발단은 2013년이었다. 남양이 대리점에 제품을 강매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뒤이어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새파란 본사 직원이 환갑에 가까운 대리점주에게 반말을 넘어 욕설을 퍼붓는 음성이 공개되자 밀어내기와 갑질이라는 실상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실태 조사에 착수했고, 같은 해 7월 과징금 124억원을 부과하면서 검찰에 고발조치 했다.

하지만 펄펄 끓던 여론과 달리 사건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못했다. 고발당한 남양유업은 오히려 공정위 처분해 불복해 반소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과징금은 119억원이 깎여 최종 5억원으로 결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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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선중규 공정거래위원회 제조업감시과장(2019년 11월 당시)이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남양유업에 대해 동의의결 절차 개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남양유업이 자신시정방안으로 대리점 단체 구성권 및 교섭 절차 보장, 거래조건 변경 시 대리점 등과 사전협의 강화, 자율적 협력이익공유제의 시범적 도입 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2019.11.19/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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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주협의회는 공정위가 과징금 부당행위 자료를 확보하는데 일부러 태만했다고 지적한다. 여론이 뜨겁자 마치 상당한 제재를 하는 척하다가 사람들 관심이 멀어지니 슬그머니 기업 편을 들어줬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기업을 살리는 쪽으로 일했는지 모르지만 소비자 불매운동까지 막진 못했다. 2012년 637억원이던 남양유업 영업이익은 갑질이 불거진 2013년에 적자(175억원)로 돌아섰다. 2014년엔 적자폭이 261억원까지 커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시 잊을 만한 사이 2015년 201억원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이듬해엔 418억원까지 이익이 증가했다.

남양유업 실적은 이들이 사고(?)를 칠 때마다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다시 대리점 갑질 문제가 터진 2017년엔 이익이 51억원으로 줄었고, 2018년 86억원, 2019년엔 4억원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남양유업과 대체 무슨 관계라…솜방망이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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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대표 흰우유 제품 '맛있는우유GT' / 사진=남양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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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갑질은 2013년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불매운동으로 대리점 매출이 줄어들자 2014년 대리점 지급 위탁수수료 비율을 2.5%p 올렸다가 여론이 식자 2016년 일방적으로 2%p를 다시 낮춘 것이다. 상생한다더니 조삼모사식 생색을 냈던 셈이다. 해당 위탁수수료는 농협에 제품을 대신 납품해주는 대리점에 지급하는 대행료였는데 공정위는 즉시 조사에 나서 1년 만에 사건을 심의 상정했다.

남양유업은 기민했다. 강력 제재를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동의의결을 스스로 택했다. 잘못을 고쳐 피해를 보상할테니 제재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 당시 정무적 판단을 내렸다. 어떤 선택이 대리점들에 실효적일지 따진 것이다. 남양유업을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고 볼 수 있다.

공정위가 남양에 과징금을 물려도 이 돈은 국고로 들어올 뿐 피해를 입은 대리점에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판단이 주효했다. 보상을 받으려면 개별 협상이나 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대리점들로선 힘에 부쳤다.


5년간 사실상 공정위 '집행유예'…가중 과징금 꺼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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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이 2014년 선보인 디저트 카페 '백미당1964' / 사진=남양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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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이 내건 시정방안은 5년 동안 심사된다. 공정위는 매년 보고를 받고, 충실 이행을 점검한다. 하지만 동의의결 절차는 이행관리가 부실하다. 공정위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동의의결을 취소해 사건 조사로 복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면죄부는 험난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남양유업이 경쟁사를 비방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특혜라는 지적이 뒤늦게 일고 있어서다. 남양유업은 이달 초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온라인에서 경쟁사를 비방하는 글을 게시한 정황이 드러나 사정당국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경찰은 남양유업이 경쟁사 원유에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고, 쇳가루 맛이 난다는 비방을 직간접적으로 지시했다는 혐의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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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조찬간담회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방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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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 문제로 8년을 허비한 남양유업은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불법적인 무리수를 택했다는 의혹을 얻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남양유업이 하도급업체에 어음대체결제수수료·지연이자를 지급하지 않자 경고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자력구제와 상생을 유도하지만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면 과징금 가중 규정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박준식 기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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