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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4년 만에 역전한 국산맥주…소비자 입맛 잡은 ‘수제맥주’가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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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규제 풀려 제조사 수 늘고 연평균 성장률 40% 웃돌아

고객 취향 더 다양…다른 산업과 협업 ‘곰표 밀맥주’ 출시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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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곰이 여기서 왜 나와?” 캔맥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제맥주 제조업체인 세븐브로이와 대한제분,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 지난 28일 캔맥주 형태로 ‘곰표 밀맥주’(사진)를 출시했다. 곰표 특유의 디자인을 그대로 살렸으며 ‘스위트(sweet·달콤한)한 위트(wheat·밀, wit·재치)’란 말장난을 활용한 카피가 눈에 띈다. 향후 맥주업계 트렌드를 보여줄 국내 1호 컬래버(협업) 맥주이다.

맥주소비가 늘어나는 여름에 접어들면서 맥주업계의 판도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 주류업계에 바뀐 세금제도가 적용되는 데다, 최근 주류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다양한 향미의 수제맥주가 출시될 뿐만 아니라 맥주산업이 다른 산업과 융합할 가능성도 열렸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올 1~5월 CU의 수제맥주 매출액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55.6% 성장했다. 매출액에서 국산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50.3%로 2016년 이후 4년 만에 수입맥주(49.7%)를 앞질렀다. 일본산 맥주 불매운동의 여파도 컸지만, 꾸준히 성장해온 국내 수제맥주가 소비자들의 입맛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이다. BGF리테일 음용식품팀 이승택 MD는 “올 초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의 매출을 4년 만에 뛰어넘었는데, 일등공신이 수제맥주”라고 말했다.

수제맥주는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에서 개발해 소량으로 생산하는 맥주를 뜻한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633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처음으로 국내 맥주시장(5조원 추산)의 1%를 넘어섰다. 2016~2018년 연평균 성장률은 40.8%에 달한다. 면허를 가진 수제맥주 제조사 수는 2013년 55개에서 올해 150개까지 늘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연간 생산량 1억ℓ 미만, 대기업 지분 33% 미만을 수제맥주 제조사로 인정하고 있다.

양조를 산업으로 인정하고 키워온 정부의 노력도 맥주산업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맥주 수요가 커지면서 정부는 소규모 맥주업체들의 제조를 허용했으나 영업장 안에서만 판매할 수 있었다. 다양한 풍미의 맥주를 즐기고 싶어 양조장을 방문하는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2014년 수제맥주 업체들도 다른 매장이나 축제 등에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고치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2017년부터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판매가 허용되고, 편의점의 ‘4캔에 1만원’ 마케팅을 펼치면서 음식처럼 맥주의 맛을 따져 골라 마시는 소비자들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4캔 1만원 이벤트는 국내맥주의 입지를 크게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왔는데, 종가세(가격 기준 세금 부과) 체제 때문이었다. 국내맥주는 출고가 대비 세금을 매기는 반면 수입맥주는 마케팅 비용을 뺀 수입신고가 대비 세금을 매겨 부담이 훨씬 덜했던 것이다. 대량생산이 힘든 수제맥주 업체에도 큰 장벽이었다. 지난해 맥주에 대한 과세체계가 종량세(용량 기준 세금 부과)로 바뀌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경향신문

백주환 OB맥주 홍보팀장은 “수제맥주는 연구·개발(R&D)로 만들어진다. 맥주 재료에 인삼도 넣어보고, 꿀도 넣어보고 다양한 실험 끝에 나오는데 무조건 값싼 맥주에 유리했던 기존 과세체계가 바뀌면서 대기업들도 수입 대신 R&D에 투자할 유인이 생겼다”며 “호가든 등 수입맥주도 위탁생산보다 국내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종가세의 족쇄에서 벗어난 맥주업계는 최근 날개까지 달았다. 정부가 주세 관련 규제를 대폭 개선한 것이다. 과세 및 주류 품질 관리를 위한 신고 과정을 대폭 단축하고, 필증 취득에 드는 비용을 낮췄다. 맥주의 외주생산을 허용해 공장설비를 갖추지 않고 맥주 제조기술만 있는 사람이 다른 양조장 설비를 빌려 맥주를 생산하는 방법도 가능해졌다. 맥주 브랜드 창업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맥주회사가 홉을 사용해 다른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맥주회사가 관심 갖는 영역은 화장품 산업이다. 독일에는 효모를 활용한 샴푸 제품도 출시돼 있으며, 일본 화장품 브랜드인 SK-II의 피테라는 청주(사케) 발효 원리를 차용한 제품이다.

김교주 세븐브로이 상무는 “규제 변화로 인해 다양한 컬래버가 가능해졌다”며 “소규모 창업자들과 다양한 컬래버를 시도할 생각이다. 곰표 밀맥주처럼 맥주산업이 아닌 다른 산업과의 협업도 계속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진만 한국수제맥주협회 과장은 “주류산업은 기본적으로 콘택트(접촉)산업인데 언택트 시대라는 트렌드를 어떻게 돌파할지 고민이 있다”고 전했다. 세븐브로이만 해도 본사가 강원 횡성에 있다. 수제맥주의 성장은 지역 일자리에도 기여하지만 여전히 홉과 밀몰트 등 맥주 원료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해 맥주산업 성장과 국내 농업과의 연계가 크지 않다는 점도 고민할 대목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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