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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연극 ‘렁스’…‘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치열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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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 맥밀란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고, 재미있고, 신랄한 지금의 이야기다. 아주 인간적이고 호감 가는 인물은 아닐지라도 사랑하게 될 듯한 두 사람을 통해 불확실성이 삶의 방식이 된 세대의 목소리.’ (-『더 가디언』)

시티라이프

무겁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쉽게 꺼내지 않는 사회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하는 영국 작가 던컨 맥밀란. 그는 이미 ‘1984’ 등의 작품에서 사회 이슈를 능숙하게 녹여 내는 솜씨를 발휘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작품 ‘렁스’에서도 다양한 사회 주체들 각각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묻고 있다. 2011년 워싱턴에서 첫 공연을 연 이후 영국, 캐나다, 스위스, 벨기에, 필리핀, 홍콩 등 전 세계에서 꾸준히 공연 중이며 한국은 초연으로 ‘연극열전8’의 첫 번째 작품이다.

지구 환경에 관해 박사 논문을 쓰는 여자와 음악을 하는 남자가 있다. 재활용을 하고, 장바구니를 사용하며,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 작은 카페에 간다. 자전거를 타고, 공정 무역 제품을 구매하며,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시위에 참가한다. 또 투표를 하고, 뉴스와 다큐를 보며, 좋은 내용의 책도 읽고, 자선 기금 마라톤 대회도 나가고,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신용 카드를 사용하면서, 스스로 ‘우리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종종 비닐을 사용하고,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며, 아보카도와 베이컨을 즐겨 먹고, 얼음을 얼린다. 운전을 하고, 자동차에 히터를 틀어 놓고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도 있다. 아기 방을 꾸미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며, 에어로졸 스프레이를 쓰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목욕을 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항상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를 고민하다.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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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에게 아이를 갖자고 말한 어느 날 오후부터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에 관해 끝없는 대화가 시작된다. 세계 인구는 70억 명이 훌쩍 넘었고 누군가는 포화 상태의 이 지구를 위해 인구를 늘리는 데 기여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한다. 정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아이를 낳아 좋은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옳을까? 도대체 부모가 된다는 게 뭐길래 이산화탄소, 탄소 발자국, 홍수, 쓰나미, 우생학, 입양, 유전, 그리고 부모를 닮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극은 사랑과 결혼, 임신과 유산, 이별 등 삶의 중요한 순간에도 그들의 선택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는 두 사람의 인생과, 긴 시간을 돌아 마침내 ‘세 사람’이 된 사랑을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그린다. 특히 개인의 선택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대 장치, 조명, 의상 등 미장센 사용을 최대한 절제한 채 두 배우가 주고받는 연기와 감정, 호흡으로 일생에 걸친 희로애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내는 독특한 방식의 극은 절제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에너지를 통해 배우 예술, 그 자체로의 연극적 매력을 선사한다. 연극 ‘오만과 편견’, 음악극 ‘태일’,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으로 다양한 공연 장르에서 섬세한 연출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박소영이 연출을 맡았다.

[글 김은정(프리랜서) 사진 (주)연극열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31호 (20.06.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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