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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감산에 추락한 유가… 하반기까지 40달러대 완만한 상승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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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60달러 선이던 국제유가는 올 3월 20달러 선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번 불붙은 하락세는 바닥이 없었다. 4월 2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선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5월 인도분이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하는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까지 나타났다. 코로나19, 원유 저장고 부족, 선물 만기일의 합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감산 합의 불발에서 시작된 유가 전쟁, 원유 저장고 포화라는 삼중고 속에 국제유가는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유가를 끌어내린 요인들이 일시에 사라지기는 어렵다. 특히 유가 반등의 열쇠로 꼽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의 유의미한 감소가 나타나기 전까지 현재의 높은 유가 변동성이 유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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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폭락의 서막

연초 60달러를 웃돌던 유가는 3월부터 급전직하했다. 국제유가는 3월 9일(현지시간)부터 대폭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24.6% (10.15달러) 떨어진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991년 걸프전 이래 최대 낙폭이다.

국제유가 대폭락 사태의 핵심은 코로나19에 따른 원유 소비량 감소와 산유국들의 증산경쟁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석유 소비가 감소한 가운데 3월 초부터 벌어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유가전쟁이 유가 폭락에 기름을 부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활동이 올스톱된 상황에서 산유국들의 감산 공조마저 무너지자 원유 시장은 대혼돈에 빠졌다.

코로나19로 각국의 석유 수요가 대폭 줄어들자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14개 회원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비(非)OPEC 10개국이 3월 4~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플러스) 회의를 갖고 원유 적정 생산량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OPEC 회원국은 100만 배럴씩, 비회원국은 50만 배럴씩 감산하자는 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사우디는 산유국들이 감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줄어든 만큼 산유량을 감축해 유가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게 사우디 입장이었다. 원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 특성상 유가 하락은 곧 재정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사우디와 러시아, 제살 깎아먹기

치킨게임 돌입한 배경은?

세계 산유량 2위인 사우디의 이 같은 주장에 3위 산유국인 러시아는 “감산할 수 없다”며 퇴짜를 놨다. 지난 2011년 셰일오일 시추에 성공하면서 세계 산유량 1위로 올라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셰일오일은 시추가 까다로워 생산 단가가 높다. 미국 셰일오일업계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선으로 사우디와 러시아에 비해 높다. 국제유가가 30달러대에 머물거나 그 아래로 떨어지면 미국 셰일업계에 치명적이다.

러시아가 산유량을 늘려 유가를 낮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면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는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파산 위기에 직면한다. 저유가가 이어졌을 때 자국 석유 업체가 입는 피해와, 눈엣가시인 미국 셰일오일 업체의 도태라는 호악재를 비교했을 때 후자가 더 크다는 계산이 서면서 감산을 반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러시아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이유도 개입돼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최대 무기인 석유를 지렛대 삼아 사우디와 미국에 맞서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기대하는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미국 셰일오일에 맞서 적정 수준의 감산을 통해 석유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국제유가 하락을 막는 데 협력해왔다. 양국의 공조로 국제유가는 수년간 배럴당 50~60달러 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어깃장을 놓으면서 이 같은 공조가 깨졌다. 이에 사우디도 기존의 감산 입장을 바꿔 증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명 박리다매 전략이다. 러시아의 감산 반대로 유가 방어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려 러시아를 유가전쟁에서 패배시키겠다는 의도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리야드 주식시장 공시를 통해 4월 1일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평균 970만 배럴에서 130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아람코의 지속가능한 최대 산유 능력은 1200만 배럴 수준이다. 이를 1300만달러까지 늘린다는 것은 사우디가 전략비축유까지 시장에 쏟아붓겠다는 의미다. 이밖에 정유사들에게 통보하는 공식 석유 가격을 20년 만에 대폭 인하했다.

OPEC의 3위 산유국이자 사우디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아랍에미리트(UAE)도 4월 1일부터 하루 산유량을 기존 300만 배럴에서 400만 배럴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증산에 러시아도 질세라 증산을 선언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다. 단기적으로는 러시아가 저유가를 버티기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러시아가 재정균형을 맞추기 위해 요구되는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대에 불과하다. 또 러시아가 경기 악화 때 끌어다 쓸 수 있는 예비 재정 수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의 경우 워낙 재정에서 원유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재정균형을 맞추기 위한 국제유가 수준이 러시아에 비해 훨씬 높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배럴당 약 80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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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감산에도 유가 추락… 왜?

이 같은 치킨게임 속에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대로 급락했다. 지난 20년 새 최저 수준까지 추락한 것이다. 이에 OPEC+는 지난 12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5월부터 6월까지 두 달간 하루 970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지난 3월 초 OPEC+의 감산 합의 불발 직후 사우디가 ‘4월 이후 최대 증산’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러시아와의 유가 전쟁도 일단 봉합됐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대 최대급이라는 OPEC+의 감산 합의 직후 국제 유가는 오히려 10% 가까이 폭락했다.

유가 폭락은 OPEC+가 합의한 감산 수준이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국제 시장의 석유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는 감산분의 두 배가 넘는 일평균 2000만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관측된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에 그치는 감산폭에 오히려 실망 매물이 쏟아지면서 유가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사상 초유 마이너스 유가

감산 합의도 유가 방어에 무용지물임이 드러나면서 유가는 추락을 거듭했다. 4월 20일(미 현지시간) 오후 WTI 5월물은 하락을 거듭하다 결국 마이너스권으로 내려앉았다. 이날 장중 배럴당 -40달러 밑으로 떨어진 유가는 결국 -37.63달러로 마감했다. 5월물 원유를 팔려면 1배럴에 이날 37달러 넘게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1983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원유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최초다.

마이너스 유가는 코로나19, 선물 만기일, 원유 저장고 포화의 합작품이다. 왜 하필 20일에 마이너스 유가가 나타났는지에 대한 답은 선물 만기일에 있다. WTI의 선물 만기는 매달 25일에서 3영업일 전으로, 이달은 21일이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원유 수요 씨가 마른 상황에서 5월물 WTI 만기일을 앞두고 선물 투자자들이 원유를 실제로 인수하는 대신 롤오버를 택하며 마이너스 유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생산된 원유도 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짐 덩어리가 됐다.

미국 내 대표적 원유 저장고는 오클라호마의 쿠싱이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본격 확산하기 전인 2월 말까지만 해도 쿠싱 저장고는 절반 정도만 차있었지만 지난달 중순 대부분이 찬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를 저장할 수 있는 유조선도 포화상태다. 갈 곳을 잃은 유조선들이 원유를 싣고 떠돌면서 유조선 임대료까지 급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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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유수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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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셰일오일 업체 휘청

결국 이들의 유가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미국 셰일 업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셰일유는 시추작업이 어려워 생산단가가 사우디의 3배에 이른다. 또 미국 에너지 업체들은 저금리 환경에서 빚을 많이 졌기 때문에 유가 폭락으로 손실을 입고 빚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연쇄 파산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인 텍사스주에 몰려 있다. 셰일오일 업체들이 파산하면 텍사스주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앞길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셰일오일 업체들이 도산하면 이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주요 금융사까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13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전략비축유 매입을 주문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4월 미국 셰일업계에서 올해 첫 파산 사례가 나왔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셰일가스를 채굴·생산하는 화이팅 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은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이 회사는 채권자들과 22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대신 자산 대부분을 양도하는 데 합의했다.

▶몸통 흔드는 꼬리

유가 변동성 키운 원유선물 ETF

4월 20일 나타난 마이너스 유가의 근본 원인은 수요 부진과 공급 과잉이지만, 상장지수펀드(ETF)가 변동성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US오일펀드(USO)는 전 세계에서 WTI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원유 ETF다. 저유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USO의 거래는 폭증했고, 대규모 자금유입이 나타났다. 연일 투자금이 몰리는 과정에서 USO는 지난해 말 대비 3배 이상 자산이 불어났다. 이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WTI선물 계약도 급격히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이 전 세계 원유 상장지수상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면서 원유선물 시장에서 ETF, 상장지수증권(ETN)이 행사하는 영향력이 급격히 커졌다. 삼성증권은 WTI선물에서 상장지수상품(ETP)이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상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ETP가 보유하고 있는 WTI선물의 보유비중이 늘어날수록 상품 롤오버 과정에서 거래월물에 대한 일방적인 매수, 매도압력이 높아지며, 이에 따라 근월물과 차근월물 간의 가격 격차는 만기가 가까워질수록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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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클라호마 주 쿠싱 지역에 있는 쿠싱 오일 허브의 원유 저장 탱크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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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폭락하니 정유업계 울상

유조선업계 호황

국내 대형 정유사 4곳은 1분기 4조원대의 적자를 냈다. 저유가로 실적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공장 가동비 등을 뺀 비용)이 추락한 게 주요 이유다. 국내 정유업계는 유가가 떨어지면 ‘재고평가손실’을 떠안게 된다. 정유사가 이미 사들인 원유가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격이 떨어져버릴 경우 손실이 불가피하다.

정유사 실적과 직결되는 정제마진도 마이너스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격 및 설비운영비 등 제반비용을 제외한 것이다.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나고 있다는 의미다. 통상 저유가 수혜 업종으로 꼽혀 온 여행·항공업은 코로나19로 인적 교류가 어려워지면서 폐업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울상을 지은 정유업계와 달리 유조선업계는 호재를 맞았다. 원유 저장 용도로 유조선의 인기가 치솟자 임대료가 폭등해서다. 코로나19로 수요가 급감해 원유가 말 그대로 남아돌게 되자 유조선이 바다의 저장 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조선 수요가 늘자 초대형 유조선(VLCC)의 몸값은 10배 넘게 뛰었다. VLCC 하루 운임비는 2만5000에 불과했지만 지난달 말 이제 20만달러까지 상승했다. 높게는 30만달러 기록도 있다. 전 세계 VLCC의 약 15%가 저장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향후 전망

공급 과잉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만큼 유가가 전고점을 회복하는 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바닥은 지난달 거쳤고, 하반기에는 40달러대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란 관측도 최근 나오고 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급락한 유가는 5월부터 이행되는 OPEC+ 감산 이행에 따라 하방경직성이 강해진 가운데 미국의 부분적인 경제활동 재개와 맞물린 수요 개선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바닥을 확인한 유가는 연말 WTI 기준 배럴당 40달러대까지 완만히 반등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바라봤다.

김광래 삼성선물 연구원은 “5월부터 시작되는 OPEC+의 감산 및 미국과 노르웨이의 자연감산이 반영되면서 WTI 가격은 연말께 30달러에서 4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혜진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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