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 긴급재난지원금 제도 대부분 몰라
일부 거주지 불분명 주민등록증 말소 등 이유로 지원금 못받기도
홈리스행동 단체 "노숙인들 지원 대상서 누락되지 않도록 해야"
27일 오후 서울역광장 인근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노숙인.사진=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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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그거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7일 오후 서울역 광장 일대서 만난 노숙인들은 "긴급재난지원금 수령을 했느냐"는 질문에 입을 모아 아예 "그런거 모른다"고 답하거나, "나라에서 돈을 정말 주느냐", "나는 트라우마가 있어 집에 못간다. 나 같은 경우는 누가 받아주냐"라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한창이지만, 노숙인들에겐 지급 장벽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숙인들은 노숙 지역과 주민등록지가 다른 경우가 많아 지원금 신청 단계부터 어려움에 직면한다. 또 주민등록증 말소 문제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
17년 전 사업 실패로 거리를 전전하게 된 60대 남성 노숙인 A씨는 "노숙인에게 집이 어디 있냐"며 "집이 있어도 당장 10원도 없는데 무슨 수로 집을 찾아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서울역에 사는 사람들 다 집이 없거나, 있어도 못 돌아가는 상황"이라며 "국민 다 받을 수 있다고 했으면서 우리는 국민도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27일 오후 서울역 광장 맞은편 한 쪽에 자리한 한 노숙인의 자리. 비닐 속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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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년째 서울역에서 지내고 있다는 노숙인 B(51)씨는 "원래 집은 부산이다. 멀리 떠나오려고 서울역으로 왔다"며 "이제는 서울역이 집인데 거주지 문제 때문에 지원금을 못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집이 가까운 사람도 다시 돌아가지 않을 마음으로 집을 나왔는데 40만원 받겠다고 집에 돌아가겠냐"며 "살았던 동네에 가는 건 심적으로도 크게 부담되는 일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지원금 못 받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15년 전 집을 나왔다고 밝힌 C(56)씨는 긴급재난지원금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그게 뭔지 모른다"며 "아예 들어본 적도 없다. 돈을 누가 준다는 말이냐"고 반문하면서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사업 실패로 23년 전 집을 나왔다는 D(63)씨는 "주민등록증이 말소돼서 받지 못했다. 다시 살리면 받을 수 있다는데 내 주소지가 밝혀지면 은행, 사채업자들이 집에 찾아갈 게 뻔하다"며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도와주는 사람들(단체)이 우리도 받을 수 있게 노력을 하고 있다는데 공무원들조차 모른다, 안된다고 하는데 이게 될 리가 있냐"며 "국민 다 준다면서, 우리는 국민이 아닌가"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27일 오후 서울역 광장 인근에서 만난 한 노숙인. 그는 긴급재난지원금 제도가 노숙인들을 위한 설명도 없고, 결과적으로 노숙인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토로했다.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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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을 돕는 시민단체는 긴급재난지원금 제도에 있어, 이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지원금 수령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9∼10일 긴급재난지원금 현금지원 대상자가 아닌 노숙인 102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 조사에서 77.5%가 지방자치단체 재난 수당을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로는 '주소지가 현 거주지에서 멀어서'(27%), '신청 방법을 몰라서'(26%), '거주불명등록자라서'(23%) 순으로 집계됐다.
8년 전부터 거리를 전전하고 있다는 60대 여성 노숙인은 "재난금인데 왜 요구 조건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거리 노숙자 전부가 하루하루 힘들어서 버티고 있다"면서 "나라에서 준다는 기본 복지조차 받을 수 없어 속상함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다 받을 수 있다는 거 우리는 왜 받을 수 없냐. 우리를 좀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서울역 광장 인근에 마련된 한 노숙인의 자리. 사진=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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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던 50대 노숙인은 "신청 기한 이내로 복잡한 절차가 해결될지 모르겠다"며 "못 받을 거 같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빈곤사회연대·홈리스행동 등 4개 노숙인 인권 단체는 지난 11일 서울역 광장서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시 노숙인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세부 지침을 개선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단체는 "공인인증서나 신용·체크카드, 휴대전화 사용이 어려운 노숙인들에게는 현장 신청이 유일한 창구"라면서 "그러나 노숙 지역과 주민등록지가 다른 데 교통비가 없어 지원금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숙인들이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찾아가는 신청 서비스'를 제공하고, 선불카드나 지역사랑 상품권이 아닌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발 생계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대책에서 정작 가장 가난한 노숙인들이 배제되고 있다"며 "노숙인들에 대한 차별 없는 재난지원금 보장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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