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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로봇이 온다

코로나에 더 커진 치킨 공화국…로봇이 튀기고 호텔선 ‘치와’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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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선정릉역 인근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 1층에 위치한 롸버트치킨 강남1호기. 치킨집이랬는데 외관이 예사롭지 않다. 카페처럼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형 통유리창에, 간판은 검은색 바 위에 모자이크처럼 네모 각진 빨간 글씨체로 ‘ROBERT CHICKEN’이라 새겨져 있다. 안에 들어서니 후끈한 유증기가 얼굴을 덮쳐온다. 15평 남짓한 매장 한가운데에는 로봇 팔 형태의 치킨 조리 로봇 두 대와 튀김기, 반죽기가 놓여 있다. 그 뒤로 ‘사람’ 직원들이 일하는 주방이 보인다.

“메뉴를 고르면 로봇이 그에 맞춰서 치킨을 튀깁니다.”

직원이 메뉴가 적힌 화면을 누르자 두 로봇 팔에 불이 들어온다. 먼저 반죽 담당 1번 로봇 팔 차례. 염지된 닭을 동그란 통에 넣고 한 마리 분량 파우더(반죽 가루)를 부은 뒤 회전하는 선반 위에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올려놓는다. 1분 남짓 통이 돌아가며 닭과 파우더가 고루 섞여 자동으로 반죽이 된다. 다음은 튀김 담당 2번 로봇 팔 차례. 스테인리스 재질 튀김망에 담긴 반죽된 닭고기를 넘겨받아 펄펄 끓는 기름통에 담근다. 튀기는 시간은 10분. 중간에 치킨 조각들의 튀김옷이 서로 눌어붙지 않도록 휘휘 저어주기도 한다. 10분이 지나고 노릇하게 잘 익은 치킨을 로봇 팔이 꺼내들고 상하로 움직이며 툭툭 기름을 털어낸다. 그제서야 직원이 다가와 조리된 치킨에 양념을 버무려 포장하고 라이더에게 전한다.

지난해 12월 롸버트치킨을 창업한 강지영 로보아르테 대표는 “조리 과정에서 사람은 처음에 재료 준비와 완성된 치킨 포장에만 참여하고, 주요 과정은 대부분 로봇이 한다. 로봇의 치킨 조리시간이나 작업 효율은 평소에는 사람과 비슷하다. 진가를 발휘하는 때는 주문이 밀려드는 피크타임이다. 사람은 지쳐서 실수도 하고 작업 속도도 느려질 수 있지만 로봇은 변함없이 일정 속도와 효율을 유지하니 생산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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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코로나19 팬데믹이 선언된 지난 2월 한 달간 배달의민족 치킨 주문 증가율이다(전년 동기 대비).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매출이 반 토막 난 오프라인 식당은 물론, 10%대를 기록한 배달앱 평균 주문 증가율도 훌쩍 웃도는 수치다.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주는 ‘마스크와 치킨’ ”이란 말도 나온다. 교촌, bhc, BBQ, 굽네 등 국내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인 올 1월 대비 4월 주문량이 10~5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배달앱 주문 5건 중 1건(22%)은 치킨이다.

단, 주문 방식은 코로나19 시대에 맞게 다소 달라졌다. BBQ 관계자는 “배달 시 집 앞에 놓고 가달라는 요청이 70~80% 증가했다. 재택근무 증가로 동네 상권에서는 치킨 네 조각으로 구성된 1인분 메뉴 주문도 20% 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며 내점(홀) 매출은 80% 감소했지만, 배달·포장 매출은 20~50% 상승하며 전년 대비 가맹점 매출이 평균 40~50% 증가했다. 이런 수요 변화에 맞춰 헬리오시티점과 용산아이파크몰 테라스 좌석 등에 테이블에서 메뉴를 고르고 비대면으로 주문 가능한 태블릿PC 주문도 도입했다”고 전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전성기를 맞게 된 치킨 시장의 눈에 띄는 뉴 트렌드는 크게 두 가지. 로봇을 통한 치킨 ‘조리 자동화’, 그리고 특급호텔과 와인이 접목되는 ‘고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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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로봇에 재료를 넣고 직원이 조리 과정을 입력하면(위) 로봇이 스스로 반죽을 시작한다(아래). 이후 튀김까지 자동으로 처리한다.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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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도 로봇이 튀기는 시대

▷서울·대구서 영업 중…프차도 “관심”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로봇 치킨집은 두 곳. 서울 강남의 ‘롸버트치킨’과 대구 동성로의 ‘디떽’이다.

전자는 기능성, 후자는 경제성에 초점을 맞췄다. 롸버트치킨은 반죽과 튀김 전 과정을 로봇이, 디떽은 튀김만 로봇이 담당한다. 로봇 가격이 각각 1억원대 초반, 4000만원대 후반으로 차이 나는 이유다. 물론 아직 초기 모델인 만큼 향후 가격은 더욱 내려갈 전망이다. 강지영 대표는 “계속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 현재 두 개인 로봇 팔을 하나로 통합하고 작업 시 회전 반경도 줄여 5000만원 이내로 가격을 낮추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인건비가 부담스러운 외식업계에서는 일찌감치 조리와 서빙을 돕는 푸드테크 로봇이 주목받았다. 업계에서는 경제성과 활용성 면에서 치킨 로봇이 가장 유망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 규모가 크고, 조리 과정이 비교적 간단하며, 치킨을 튀기며 뜨거운 유증기를 쐬는 일이 위험도가 높아 사람 대신 로봇한테 맡기는 것이 여러모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11개 운영하는 한 다점포 점주는 “일평균 50마리를 파는 매장은 주방 인력이 1~2명, 100마리 팔면 2~3명, 200마리 이상은 4~5명 필요하다. 치킨 로봇이 튀기는 일만 대체해줘도 최소 1명, 최대 2명 이상 인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로봇은 주말에 쉬지도 않고, 24시간 가동할 수 있으니 잘 활용하면 경제성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업계도 치킨 로봇에 관심이 많다. BBQ와 굽네치킨은 주방 내 치킨 로봇 도입 움직임에 대해 “적극 검토 중” “긍정적으로 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가맹 문의도 이어져 디떽은 연내 10개 이상 매장을 늘릴 계획이다. 이미 경남 김해, 전남 여수 등에 가맹점 6개가 6월 중 오픈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온다. 원정훈 디떽 대표는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치킨 로봇 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거나 협의 중이다. 향후 10년 안에 사람이 튀기는 치킨집은 공중전화 부스가 사라졌듯 크게 줄어들고 치킨 로봇이 대체할 것이다. 여러 업체가 계속 성능을 개선한 신모델을 선보이면 치킨집이나 프랜차이즈가 원하는 모델을 구입하고, 이전 모델은 가격이 하락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한식이나 분식은 메뉴가 많고 레시피가 복잡한 데다 손맛도 중요해 로봇이 조리하기 어렵다. 반면 치킨, 우동, 국수 등은 튀기거나 삶고 데치는 작업이 비교적 단순하고 정시성이 중요해 오히려 로봇이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치킨 로봇 업체가 새 레시피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시장성이 확인된 인기 레시피를 보유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치킨 로봇을 도입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빠르면 향후 1~2년 안에 로봇 치킨집이 널리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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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시장이 커지며 치맥에 이어 치와(치킨+와인)도 주목받는다. 사진은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가 지난 5월 17일 제1회 와인앤푸드 페어링 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치킨과 와인 페어링 심사를 하는 모습.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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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야식’서 호텔식으로

▷와인과도 매칭…‘귀하신 몸’

치킨의 위상 변화는 포장지의 변천만 봐도 알 수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치킨은 은박지나 비닐봉지에 대충 담아 파는 음식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피자처럼 종이상자에 가지런히 담겨 배달됐고, 2010년대에는 명품 브랜드의 가방 디자인을 패러디한 포장지도 등장했다.

2020년대에는 어떨까. 이제는 아예 특급호텔의 룸서비스 메뉴로 ‘승격’됐다. 콧대 높던 특급호텔들도 최근 잇따라 치킨 판매에 나서는 중이다.

신라호텔과 인터컨티넨탈호텔은 프리미엄 치킨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신라호텔은 룸서비스 메뉴에 프라이드 치킨을 추가했다. 5만8000원에 순살 치킨·샐러드·소스·피클 등이 포함된 구성이다. 인터컨티넨탈호텔은 ‘로스트 치킨’ ‘갈릭 샤오기 치킨’을 판매한다. 지난해 7월 선보인 로스트 치킨은 준비한 수량이 모두 동났던 인기 메뉴. 올해는 중식 스타일의 갈릭 샤오기 치킨을 메뉴에 추가했다. 가격을 합리적으로 낮춰 6월 초 다시 선보일 계획이다.

노보텔앰배서더동대문호텔은 ‘그랩 앤 고(GRAB&GO) 치킨박스’를 내놨다. 오리지널 치킨(프라이드·양념)과 허니콤보 치킨 중 선택이 가능하다. 캔맥주 2개를 함께 제공하고, 프로야구를 객실에서 시청하는 ‘빅토리 패키지’로 선보여 ‘치맥의 정석’을 따랐다.

서울드래곤시티호텔은 합리적인 가격의 ‘메가 치맥박스’를 앞세운다. 닭 날개와 다리만 들어 있는 콤보 메뉴에 생맥주 2잔이 들어 있다. 2만2000원으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게 특징. 호텔 관계자는 “투숙객들이 외부에서 치킨을 주문하고 배달되기까지 50분이나 기다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따뜻한 치킨을 바로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해 메뉴를 만들었다. 준비해둔 포장상자가 소진돼 재주문해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고 자랑했다.

호텔 치킨의 인기 배경에는 ‘치킨’ 외에 호텔이라는 공간을 소비하는 트렌드 변화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호텔에서 일상 속 힐링을 즐기는 ‘호캉스(호텔 바캉스)족’이 늘어나며 ‘호텔 치킨’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호텔이 기존처럼 잠만 자는 곳이거나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면 굳이 호텔에 와서 치킨을 시켜 먹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호텔은 단순한 숙박 장소가 아니다. 스포츠 경기와 넷플릭스를 보고 다양한 호텔 프로그램을 즐기는 등 여가활동을 하는 곳이 됐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다 보니 대중적인 치킨을 주문하는 고객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치킨과 와인을 곁들인 ‘치와’ 시장도 주목받는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는 지난 5월 17일 제1회 와인앤푸드 페어링 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경기도 남양주 와부읍 푸드파크에서 치킨과 와인 페어링 전문가 심사를 국내 최초로 진행했다. 2만원 이하 한국 와인과 수입 와인 100여종을 출품받아 프라이드 치킨, 간장 치킨, 양념 치킨, 매운 치킨, 허니 치킨 등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 메뉴 5종과의 마리아주(음식과 주류의 궁합)를 평가한 것이다. 평가 항목은 치킨과의 궁합(산도, 아로마, 알코올, 타닌, 풍미, 무게감, 당도)과 와인 품질(색상, 아로마·부케, 풍미) 등이다.

심사 결과, 대체로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의 점수가 높았다. 프라이드 치킨과 잘 어울리는 와인은 ‘시에로 뀌베 프리베(이탈리아)’ ‘프레시넷 꼬든 네그로 까바 브뤼(스페인)’(이상 스파클링 와인), ‘군트럼 리슬링 로얄 블루보틀(독일)’ ‘더 롱 독 블랑(프랑스)’(이상 화이트 와인), ‘까잘 가르시아 스위트(포르투갈, 스위트 와인)’가 선정됐다. 양념 치킨과 잘 어울리는 와인은 ‘베를린 리슬링(독일)’ ‘리슬링 나헤(독일)’(이상 화이트 와인), ‘몰리노 로꼬 스위트(스페인)’ ‘산타리타 120 카베르네 소비뇽(칠레)’(이상 레드 와인) 등이 꼽혔다.

고재윤 경희대 호텔관광대 교수(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장, 심사위원장)는 “치킨은 양념의 단맛이 강해 역시 단맛이 나고 맥주처럼 탄산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함께 곁들이면 풍미가 극대화되며 더욱 조화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향후 소비자 입맛과 건강을 고려해 ‘치맥’에 이어 ‘치와’가 주목받을 것이다. 와인과 조화를 꾀한다는 것은 그만큼 치킨의 가치가 높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로봇 치킨’과 ‘호텔 치킨’ 먹어보니

튀김 스킬, 아직 사람만 못 하지만 저렴하면 용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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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치킨은 생각보다 고급스러웠다(위). 로봇이 튀긴 치킨은 심심한 맛이 다소 아쉬웠다(아래). <반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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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특급호텔 셰프’가 튀긴 치킨은 맛이 어떻게 다를까. 기대를 품고 치킨을 시식해봤다.

전자는 강남 롸버트치킨의 ‘후후치킨(프라이드 반, 후추양념 반)’. 치킨집 ‘기본기’의 척도인 프라이드 치킨 맛은 기대 이상이다. 여타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맛이다. 쌀가루로 반죽해 바삭함이 더하다. 다만 튀김 실력은 다소 아쉽다. 치킨 특유의 구불구불한 ‘컬(튀김옷 형태)’은 많을수록 바삭한 식감을 더해준다. 컬의 많고 적음은 치킨을 튀길 때 얼마나 잘 휘저어주느냐에 달렸다. 로봇은 반죽된 치킨을 튀김망에 담아 한 번에 기름통에 넣고 사람의 부드러운 ‘손목 스냅’도 없다 보니 컬이 다소 적어 수제 치킨 특유의 바삭한 맛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했다.

호텔 치킨은 어떨까. 노보텔앰배서더동대문호텔의 ‘그랩 앤 고’ 치킨박스는 치킨 무 대신 야채 피클이 제공돼 신선하다. 양념은 달거나 자극적인 조미료 맛이 아닌, 깔끔한 맛에 파슬리도 뿌려져 과연 호텔 치킨다운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치킨을 튀긴 후 3시간 지나 식은 상태로 먹었는데도 바삭함이 살아 있다. 3만원이라는 가격이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1만~2만원에 달하는 호텔 커피보다는 납득이 된다.

서울드래곤시티호텔의 ‘메가 치맥박스’는 요리보다는 ‘안주’ 느낌이 강하다. “먹으면 맥주가 계속 생각나도록 염지를 강하게 했다”는 호텔 측 설명이 수긍이 간다. 세 조각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맥주에 손이 갔다. 인기 부위인 닭 날개와 다리만으로 구성한 것도 특징이다.

총평. 호텔 치킨은 다소 비싸지만 나름 ‘비싼 값’을 하는 맛이다. 호텔에서 룸서비스로도 제공되니 공간이 주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로봇이 튀긴 치킨은 아직 바삭한 식감이 살짝 아쉽지만 그만큼 저렴하게 판다면 가성비는 기대해볼 만하다. 디떽의 경우 1만2900원에 떡볶이 등과 함께 치킨을 무한리필로 제공한다.

원정훈 디떽 대표는 “치킨만 따지면 3000원 정도 가격 인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 치킨 모두 먹고 나서 배가 아프지 않았다. 기름기가 많은 치킨치고는 장에 자극이 덜하다. 그동안 치킨을 먹은 후 배탈 때문에 고생했던 사람이라면 세 치킨 모두 훌륭한 선택지가 될 만하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0호 (2020.05.27~06.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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