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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코로나19 위기에 보우소나루의 ‘나쁜 선택’…‘경제’와 ‘군부’ [김향미의 ‘찬찬히 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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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연방 경찰’ 로고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브라질리아 대통령 관저인 알보라다궁을 나서고 있다. 브라질리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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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6일(현지시간) 40만명에 육박,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이달 중순 이후 날마다 1000명 안팎의 사람들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고 있다. 브라질에 빈민가가 많다고는 하지만 과거 브라질 정부는 말라리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지카바이러스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아시아·유럽보다 비교적 늦은 발병으로 방역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주의자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경제’를 우선한 ‘나쁜 선택’들을 하면서 ‘예상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유럽에서 코로나19가 급증하던 2월 말~3월 초 브라질 보건부는 대규모 집회를 금지하고, 유람선 운항을 중단시키고, 사람들에게 되도록 집에 머물며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라는 내용의 방역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주정부들은 이 지침을 실행하는 데 역량을 투입했다.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지 이틀 뒤인 3월13일 갑자기 보건부의 방역 가이드라인이 변경됐다. 대규모 집회만 금지됐을 뿐, 평상시 수준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도록 한 것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나쁜 선택’의 시작이었다.

보건부에서 일했던 전염병 전문가 훌리오 크루다는 26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3월13일부터 연방정부가 코로나19 대책을 총괄하기로 했고, 방역의 방향도 바뀌었다”고 했다. ‘코로나19 방역’ 책임기관이 보건부에서 대통령궁 수석 참모진 ‘카사 시빌’(Casa Civil)로 바뀌는, ‘권력이동’도 일어났다. 대통령궁 수석 장관인 월터 수에자 브라가 네투 육군 참모 총장이 사실상 방역 책임자가 된 것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3월15일 대중 집회에 참석해 당시 루이스 엔히키 만데타 보건부 장관과 충돌했다. 그는 다음날엔 네투 총장을 필두로 한 ‘위기 내각’을 새로 꾸렸다. 3월17일 브라질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 무렵 정부 관료들은 봉쇄조치 추진 쪽으로 보우소나루 대통령 설득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나쁜 선택’은 계속됐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던 만데타 장관을 지난달 16일 해임했다. 이후 전염병 대응 경험이 없는 종양 전문의 네우손 타이시를 보건장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말라리아 치료제 사용을 두고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이견을 보였고, 이달 15일 타이시 장관도 사임했다.

이 과정에서 정작 코로나19 진단 키트 및 의료장비 구입 등에 관한 정책 결정은 뒷전에 밀렸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에 대응했던 호세 템포라오 전 보건장관은 “(두 번의 장관 교체는) 전염병 대응 속도 및 질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비극적인 결정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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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아마조나스주 마나우스에서 26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코로나19로 숨진 이들의 시신이 담긴 관을 집단 매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마나우스|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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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의 동기는 ‘경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 3월 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0%로 하향조정했다. 마음이 급해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틈만 나면 집회나 TV에 나와 코로나19를 과소평가하며 “경제 회생”을 주문했다. 두 아들 비리 의혹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내몰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지지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경제 참모 중 한 명인 솔랑게 비에이라는 지난 3월 한 회의 석상에서 “코로나19 노인사망률이 높다는 건, 연금 적자를 줄일 수 있어 경제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작 브라질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실패,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브라질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브라질 경제부는 지난 13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7%로 제시했다.

보건장관 자리는 군 장성인 에두아르주 파주엘루가 채웠다. 브라질 일간 폴랴 지 상파울루에 따르면 최근 한 달새 보건부에는 최소 21명의 군 인사가 새로 자리를 차지했다. 타이시 장관 사임 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말라리아 치료제 사용 확대 등 자신의 뜻대로 코로나19 대응을 밀어붙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건 정부 관리나 주지사가 아니라 군부가 됐다.

군인 출신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이전에도 장관 22명 중 8명을 군 장성 출신을 임명했다. 또 국방부 예산을 대폭 늘려 ‘브라질 정권 중 가장 군사화된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이 보건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로이터는 “브라질이 코로나19와의 전투를 위해 군인들을 데려왔으나, 브라질은 전투에서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에서 수십년간 활동한 예일 공중보건스쿨의 알베르트 코는 “브라질의 빛나는 한 가지는 공중보건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보는 건 매우 슬프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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