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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시선]부박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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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관련 확진자들로 인해 코로나19 재확산 공포가 한창이던 때 그 진원지인 클럽을 두고 성소수자들을 향한 비난이 창궐했다. 비난은 무책임하게 클럽과 코인노래방 등을 다닌 청년들에게로 옮겨붙었다. 그 비난은 그즈음 이태원 일대 어느 행사에 참석한 연예인들을 찾아내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신분과 동선을 속여 방역에 혼선을 준 인천 학원강사에게로 번졌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잘못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애초에 그가 왜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사그라들고, 재확산하기를 반복할 때마다 특정 계층을 향한 비난과 혐오도 마른 들에 불 번지듯 점화된다. 그 불에 데는 게 두려워 누군가는 숨거나 거짓말을 하며 바이러스를 옮긴다. 어느 확진자는 ‘확진자’라는 낙인이 찍혀 한국 사회에서 살 자신이 없다며 치료를 다 받고 어느 정도 안정되면 이민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바이러스야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잠잠해지겠지만, 누군가를 비난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기를 반복하는 우리 습성을 치료할 백신과 치료제는 언제쯤 나올까?

경향신문

오수경 자유기고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이번엔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후 부천 나이트클럽을 방문한 확진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보건소에 남긴 전화번호로는 연락이 닿지 않아 지역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비난 대상이 된 데는 ‘베트남 국적 남성’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당장 외국인을 향한 온갖 혐오의 언어가 넘쳤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우리나라에 단 8명만 있다는 베트남 출신 귀화 경찰관 이보은 경장의 노력으로 그 남성이 안심하고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효과적인 외국인 활동을 위해 채용한 귀화 경찰관이 코로나19의 지역 확산을 막은 것이다. 다행이라며 안도할 일이 분명한데 이보은 경장과 진행한 어느 인터뷰 중 한 대목이 가시처럼 걸렸다. 뉴스 진행자는 인터뷰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귀화 경찰관들을 두고 요즘 취업이 얼마나 힘든데 귀화 경찰관을 많이 뽑아서 경찰 채용 정원을 잡아먹느냐 이런 악플도 달고 그러던데 지금 듣고 보니까 전국에 몇 명 되지도 않고 정원 외로 뽑는 특례 채용이고 필수 인력만 뽑는 거잖아요.”

이 짧은 말 안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혐오해왔는지 콕콕 박혀 있었다. 아무리 필요한 일을 했더라도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제와 혐오의 언어가 따라붙을 것이 뻔하므로 뉴스 진행자는 “전국에 몇 명 되지도 않고 정원 외로 뽑는 특례 채용”임을 굳이 강조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기어이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외국인을 경찰로 채용해야 하는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뉴스 진행자의 의도도 읽히고, 댓글 다는 이들의 부박한 마음도 짐작되어 슬퍼졌다.

존재 이유를 ‘굳이’ 설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삶도 슬프지만 ‘기어이’ 그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삶도 가엽다. 그렇게 타인을 부정하며 유지하는 삶은 한없이 외로울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으며 성적 지향, 종교, 직업, 인종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사회란 불가능한 것일까? 배제와 혐오 백신과 치료제도 시급하다.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할 이유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manseos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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