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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헤럴드비즈]긴급재난지원금’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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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빌미삼아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환영하는 이 조치에 대해 경제학자의 충정(衷情)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며 역주행해야 하는 필자의 심정이 착잡하다.

“코로나 시국에서 돈 풀기는 긴요하다. 그러나, 포퓰리즘적 돈 뿌리기는 안 된다!”

필자는 이전 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돈 풀기’와 ‘돈 뿌리기’는 어떻게 다른가? 이를테면 타격을 받아 고통을 겪는 기업이나 가계를 대상으로 금융 또는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은 ‘돈 풀기’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정부가 재정권을 남용해 공짜 돈을 함부로 지급하는 것은 ‘돈 뿌리기’에 해당한다.

돈 뿌리기는 당장에도 비효율적이지만 무엇보다도 향후 포퓰리즘 경제정책에 의해 국민경제가 망가지는 길로 그 나라를 진입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어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공짜 돈을 뿌렸을 때 국민이 좋아하면 인기를 얻게 되고, 이를 경험한 경우 명분만 만들 수 있으면 그것을 거푸 뿌리게 된다. 한편 한 번 지급하기 시작한 공짜 돈은 더 늘리기는 쉬워도 도로 줄이기는 어렵다. 받는 측에서는 한 번 받을 때는 고마워하고, 두 번 받을 때는 당연히 여기며, 세 번 받을 때는 적다고 불평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는 쪽에서도, 받는 쪽에서도 공짜 돈 받는 게 습관이 되면 투여량을 계속 늘려야 하는 마약과도 같다. 공

짜 돈 뿌리기가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한 정치권에서는 여당과 야당,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을 막론하고 서로 포퓰리즘 경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총선 과정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그런데 공짜 돈을 계속 뿌리려면 재정적자는 불가피해진다. 어차피 세금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정부는 적자국채를 계속 발행해야 한다. 이후 그 나라 경제는 다음의 세 갈래 경로를 동시에 밟아야 한다.

(1)공짜 돈을 계속 뿌리다 보면,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는 전반적으로 방만한 재정지출이 이뤄지기에 수요 과다로 물가상승이 시작된다. 그다음부터는 최소한 ‘계속 커지는 국채이자 부담분+물가상승분’만큼 재정지출이 더 이뤄져야 하고, 그것이 물가를 더 상승시켜 재정지출 규모가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막대한 규모의 적자국채를 민간부문에서 인수할 여력은 소진되기 때문에 정권은 중앙은행을 종용해 직·간접적으로 그것을 인수하게 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정부가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돈을 살포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초인플레이션이 유발되는 건 시간문제다.

(2)국가부채 과다로 국가신용도가 추락해 외환위기도 발생한다.

(3)공짜 돈을 뿌리기 위해서는 투자효율이 높은 부문에 재정자금을 투입하지 못하고, 공짜 돈에 취한 국민은 애써 일하려 하지 않게 된다. 생산성은 떨어지고 임금은 올라 국가경쟁력은 저하된다. 결국 생산활력 저하 및 수출 부진으로 국민소득 감소 및 경기침체가 초래된다.

그리하여 최근의 베네수엘라처럼 나라경제는 총체적으로 망가진다. 국민 다수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물자 부족에 시달려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의외로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는다. 생계유지에 필수적인 것이 돼 버린 각종의 공짜 수당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그렇지만, 포퓰리즘 바이러스도 초동 단계에서 제대로 방역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친노조 정책 등으로 기초체력이 약해지고 있는 한국 경제가 포퓰리즘까지 감염된다면 장차 그에 따른 고통은 특히 중산층과 서민의 몫이 될 것이다.

국민께서는 목전의 현금에 현혹되지 마시고 방역의 주체가 돼야 할 것이다.

배선영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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