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아닌 계엄군 장갑차에…"
[앵커]
1980년 5월 당시 전남 도청 앞에서 시민들과 대치한 계엄군 대대장이 처음으로 털어놓은 내용도 있습니다. 저희 JTBC가 인터뷰를 했는데 주목할 부분은 전두환 씨가 그간 했던 주장과 다른 부분들입니다.
먼저 봉지욱 기자입니다.
[기자]
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
계엄군에 맞선 광주 시민들로 가득합니다.
이날 오후 집단 발포로 시민 70여 명이 사망합니다.
전두환 씨는 이를 과격 시위가 부른 참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회고록에는 시위대 장갑차가 공수부대를 향해 돌진했고, 미처 피하지 못한 부대원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고 적었습니다.
계엄군 기록에도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해 63대대 병사 1명이 사망했다고 돼 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이 시위대 장갑차의 돌진이 결국 계엄군의 발포를 유도했단 겁니다.
하지만 현장을 지휘한 공수부대 대대장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다른 말을 했습니다.
[이제원/당시 11공수 62대대장 : 상부 지시는 계속 사수하라 이거야. 내가 장갑차 옆으로 지나가면서 '야 시동 걸어' 시동 거는데 부르르 하는데 화염병이 뒤에서 그냥 다닥 떨어지더라고 화염병. (그때 장갑차를 뒤로 뺀 겁니까?) 그렇지. 부르릉 걸자마자 화염병 던지니까 장갑차 뒤로 확 뺐지.]
불이 번지자 급히 후진했단 얘기입니다.
[이제원/당시 11공수 62대대장 : 근데 그때 우리 장갑차에 그 하나가 깔려 죽은 건 아마 사실일 거예요. (계엄군 장갑차에?) 두 대인데 우리 차에 그랬을 거야.]
당시 금남로 전일빌딩 옆에는 11공수 61, 62대대 700여 명이 장갑차 두 대를 앞세우고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62대대장이 본인 대대의 장갑차가 공수부대 권용운 일병을 사망케 했다고 말한 겁니다.
물론, 대대장이었던 이제원 씨는 21일 계엄군 사격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고 자신은 사격을 말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계획적인 발포까진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두환 씨가 '자위적 발포'의 근거로 삼은 시위대 장갑차로 부대원이 죽은 사건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영상디자인 : 조승우)
봉지욱 기자 , 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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