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김주현 `생명의 다리-9개의 기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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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화가 박수근이 물감을 덧칠해 화강암처럼 단단해진 화면에서 할아버지가 손자를 품고 있다. 가난했지만 서정적인 1960년 거리 풍경을 담은 '할아버지와 손자'는 박수근 작품 중에서 드문 대작으로 세로 146㎝, 가로 98㎝에 달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71년 이 그림을 100만원에 구입했는데, 현재 보험가액은 100억원대에 이른다.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미술관에 소장품 구입 예산이 생기자마자 수집한 작품으로 학예직의 심미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첫 소장품 상설전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에 박수근을 비롯해 고희동, 오지호, 김환기, 김기창 등 20세기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 작가 50명의 작품 54점이 걸렸다. 특히 고희동 '자화상'(1915)은 국내에 남아 있는 서양화 중 가장 이른 시기 작품으로 화실에서 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그렸다. 가슴을 풀어 헤친 자세와 일상의 사실적 묘사 등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었다. 오지호 '남향집'(1939)은 화면 가운데 나무를 과감하게 배치하는 사진적인 구도와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처리하는 등 인상주의 화풍을 강하게 보여준다. 바이올린을 배운 김환기가 같은 주제를 반복하고 변형하는 론도 음악 선율을 담은 '론도'(1938)는 등록문화재 제535호 작품이다. 김기창이 여동생과 건넌방에 살던 기생 딸을 그린 '정청'(1934)은 일본인이 소장했던 작품으로 2016년 경매를 통해 사들였다.
소장품은 미술관의 역사이자 정체성, 자존심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소장품 상설전을 열어왔지만 2013년 개관한 서울관에서는 처음이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걸린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처럼 국내외 관람객이 언제나 볼 수 있는 대표작을 전시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상설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8553점 중에서 엄선한 이번 전시는 1년간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7일 방탄소년단 RM(김남준)이 관람했을 정도로 세간에서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도 1985년부터 수집한 소장품 5173점 중 86점을 선별하고 45점을 추가해 '모두의 소장품' 전시를 6월 14일까지 연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20세기 대표 회화와 조각에 초점을 맞췄다면 서울시립미술관은 21세기 미디어아트와 설치 미술에 무게중심을 뒀다.
먼저 3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햇살 아래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조각가 김주현이 아프젤리아 나무 막대 1971개를 그물망처럼 엮은 원형 다리 '생명의 다리 - 9개의 기둥'(2007)에 각종 식물 화분을 배치하고 나무 테이블과 책장을 곳곳에 놓은 '그린 라이브러리' 덕분이다. 김옥선·이혁준·전명은 작가가 힘을 보탰으며 경기도 용인시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제공한 자연 관련 책들을 책장에 꽂아놨다. 미술관에 들어온 식물을 위해 천장 창문 덮개를 걷어내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했다. 한희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작가가 자연 햇빛을 강하게 요구해 천장 창문 덮개를 걷었고, 다른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자외선 차단 필름까지 붙였다. 3층 바닥 중앙에 뚫려 있던 공간도 그동안 막아놨는데 이번에 열어 2층이 훤히 보이도록 했다. 수학, 건축, 자연을 결합한 이 작품은 사람이나 동물이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 로터리 형태여서 미술관의 개방성을 강조했다"고 했다.
맞은편 전시장에는 프리미엄 영화관처럼 편한 소파를 설치해 영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시어터'를 꾸며놨다. 여기서 드론으로 촬영한 세상과 위성사진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그리고 편집해서 만든 납작한 풍경 비디오 작품 최성록 'Scroll Down Journey(모니터 화면 정보를 위에서 아래로 연속해서 움직이는 여정)'를 감상할 수 있다. 사람이 만든 기술과 도구의 시선을 이용해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새롭게 생성되는 감각을 보여준다.
1층 전시장에는 김기라·김형규, 로와정, 리슨투더시티, 무진형제, 문경원·전준호, 뮌, 믹스라이스, 파트타임스위트 등 작가 2명 이상으로 구성된 콜렉티브(팀)들이 다양한 사회 주제를 다룬 소장품을 전시한다.
두 미술관은 그동안 공모나 추천, 내외부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수집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소장품 구입 예산은 53억원, 서울시립미술관은 16억원이다. 이번 두 전시 모두 사전 예약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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