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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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신상을 식별·암시할 수 있는 정보는 절대 공개하지 말아달라."
"피해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말아달라."
지난달 29일 열린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등의 첫 공판준비기일. 재판이 끝난 직후 피해자측 변호인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건에 대한 내용이라기 보단, 이를 취재하는 언론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호소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실효적으로 대응하고자 출범한 '텔레그램 성착취 대응 공동대책위원회(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탁틴내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박수진 변호사는 이날 "피해자분들 변호사로서 향후 재판 과정과 관련해 언론에게 강력히 부탁드린다"면서 운을 뗐다.
첫번째 요구는 유출된 공소장과 수사기록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피해자 찾기'식 기사를 지양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재판이 시작된만큼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정보라 할지라도 그것이 피해자 신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공개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했다.
두번째 요구는 피해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다. 이 사건 자체의 특수성 때문에 피해사실이 구체적으로 보도되는 것만으로도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설령 피해자를 가명으로 처리해도 피해내용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일 경우, 포털에서 검색되는 정보 등과 결합해 특정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요구는 법원 취재기자 입장에선 무리한 요구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통상 재판을 보도하는 '법원 출입기자'들은 법정에 직접 들어가 취재한다. 재판장과 검찰, 피고인 측 변호인 등 변론 내용을 메모하거나 타이핑해 기사 작성에 활용하는데, 이 모든 과정은 공판절차가 '공개주의'라는 대원칙을 전제로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사 기록 등 서류 중심의 재판이 아니라 공개된 법정에서 이뤄지는 진술을 근거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와 이를 근거로 공개된 재판을 취재하는 언론은 '투명성'이라는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또 수사때보다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전모가 규명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취재를 원천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법조계와 언론학계 등에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계기로 언론이 성범죄 피해자 보호에 적합한 '새로운 보도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재판장이 재판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과 별개로 각 언론사별로 해당 내용을 보도하는게 적절한지, 자체적으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한다고 해서 꼭 다 쓰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경쟁이 치열한 언론시장에서 개별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이를 제어하기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때문에 'n번방' 처럼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하고 후유증이 큰 사건인 경우 언론계 내에서 해당 사건 만큼은 속보경쟁을 말자는 식의 합의를 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이 없이는 과거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나 최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처럼 피해자 이름과 직책 등이 특정되는 일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라고 해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까지 '국민의 알 권리'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호 기자 be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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