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출산율은 현대 인류가 가보지 못한 ‘극초’ 저출산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전쟁 중에도 그보다 높게 나온다는 합계출산율 1.0은 재작년에 붕괴했는데, 불과 2년 지난 올해는 0.8대로 떨어질 것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까지 더해 내년 출산율은 0.8마저도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인구 재난 상황이 초래할 암울한 시나리오들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내년 출산율을 이렇게 확언하는 인구학적 근거는 청년들의 혼인 경향이다. 2010년경부터 우리 청년들이 미혼에서 기혼으로 이행하는 비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추세 반등의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5년 전부터 그 하락세가 급격히 빨라졌다. 청년들이 혼인을 하지 않으니 태어나는 아기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청년들의 결혼을 위해 어떠한 정책이 필요한가를 묻는 설문에서는 주거정책과 일자리 정책이 압도적인 선택을 받는다. 일자리와 주택이 청년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생애과정의 이행을 가로막는 가장 핵심적 장애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저출산 정책은 이런 핵심 문제들과 맞붙기보다는, 출산과 양육 복지지원에 초점을 맞춰왔다. 여기서 성과 없이 140조원을 썼다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우리 사회의 가족복지는 더 강화돼야 하지만, 그것이 저출산에 맞서는 본질적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3월 말 나온 주거정책 계획(주거복지 로드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계획에 따르면 ‘신혼희망타운’(분양)이나 ‘맞춤주택’(임대) 등의 지원규모를 크게 늘리고, 신혼부부의 전세‧구입자금 지원(저리대출)을 위한 자금과 대상을 확대한다고 한다.
물론 그 지원 물량이 충분하지 않다. 2025년까지 제공 계획인 50만채(분양 10만채, 임대 40만채)의 주택 물량은 한해 20만 쌍 정도인 신혼부부(초혼기준)들과 기존 신혼부부들의 주거수요를 충분히 채우지 못한다.
하지만 과거 저출산 정책에서 주거지원이 기존 정책에 저출산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분명히 긍정적인 진전라고 할 수 있다.
청년을 위한 주거정책 마련도 중요한 정책 변화이다. 발표된 계획에는 일자리 연계, 기숙사형, 노후고시원 리모델링 등 청년의 필요에 맞추려는 다양한 형태의 주거지원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주거 안정을 통한 청년의 생활여건 개선과 자산형성 기여는 분명히 청년들이 새로운 생애단계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무주택 서민’만을 대상으로 하던 주택정책이 청년을 새롭게 포함하는 것은 주택정책의 진일보라고 평가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주거지원 확대와 함께 전반적 부동산 시장이 안정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주거지원보다는 서울 등 특정 지역에 일반주택의 공급확대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런데 인구학의 시각에서는 좀 의아하다. 최근 주택가격이 급등한 서울에서는 인구가 10년 전부터 감소하고 있다. 대신 가구 수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주택 구매력이 높지 않은 1, 2인 가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주택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차원에서만 다뤄질 일이 아니다. 주택가격 관련 정부의 관리규제도 주거복지 확대와 함께 병행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주택 가격은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정규직 청년들조차 자신들의 근로소득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 청년들에게 주거정책은 아이를 낳으라는 강요가 아닌, 생애과정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연인을 만나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애과정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저출산을 유발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가 무언가 크게 잘못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은 꾸준히 진행되어져야 하고, 정부는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주거는 청년의 삶과 우리의 미래에 대한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