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 신임 이사장 취임한 여성학자 이나영 중앙대 교수
"정의연, 국내외 전시성폭력 문제 활동가·연구자들 잇는 교량 될 것"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신임 이사장 |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맨 처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세상에 알린 199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의식 수준은 정말 낮았고, 관련법도 미비했죠. 김 할머니의 고백은 '가해자의 책임'과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게 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효시였습니다."
제1천437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이나영 신임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이같이 평가했다.
이 이사장은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윤미향 전 이사장의 후임으로 지난달 27일 정의연 이사회에서 선출됐다. 국내 대표적 여성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일본군위안부연구회 부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다.
이 이사장이 처음 일본군 위안부 관련 활동에 뛰어든 계기는 미국 유학 중이던 2002년 동두천·의정부 일대 미군 '기지촌'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였다. 당시 기지촌 여성 인권단체 '두레방'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 보니 역사적 맥락이 유사한 위안부 문제에도 자연히 관심이 갔다.
이 이사장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문제를 공론화하고자 백방으로 뛰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들으며 '들은 책임', '알아버린 책임'을 느꼈다"며 "이 운동을 기록하고, 알리고, 계승하는 일에 앞장서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신임 이사장 |
이 이사장은 한국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제의 만행'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물론 위안부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체제의 산물"이라면서도 "동시에 그 배경엔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여성 혐오적 문화가 있었고, 일자리를 찾던 가난한 식민지 여성을 이용했다는 계급적 맥락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내부의 여성 혐오와 성폭력 문화는 여전하다. 최근 벌어진 텔레그램 'n번방' 사건도 피해 여성들을 '노예'로 부르며 성 착취물을 제작한 범행 아니었느냐"며 "우리 안의 가부장적 문화, 여성 혐오적 문화를 직시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요시위에 참여하는 시민 중엔 10대, 20대 젊은 여성들이 많은데, 소녀상을 보며 오늘날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우리 사회의 성폭력과 인권침해 문제를 되돌아보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연의 향후 활동에 대해 이 이사장은 "국내외 전시성폭력 문제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잇는 교량 역할이 될 것"이라며 국내외 활동가·연구자들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힘을 쏟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이 이사장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사람들의 연구물을 번역해 소개하는 작업이 특히 중요하다. 여전히 영미권 학계에서는 (위안부 문제의) 인지도가 낮은 것이 현실"이라며 "각국 시민단체, 국제기구 등과의 연대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를 조사하고 알리기 위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노력도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연의 전신) 출범 이후 30년간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위안부 문제 관련 독립 연구기관이 없었다"며 "위안부 문제 연구를 위한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 법안이 임기 종료를 앞둔 20대 국회에 여전히 계류된 상태인데, 21대 국회에서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외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위안소' 유적지를 발굴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이나 관련 사료를 점검해 보완하는 등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많은 상황"이라며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운동을 계승할 미래 세대 연구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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