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산유국들의 저주가 시작됐다. 유가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락하면서 원유를 팔아 국가 재정을 운영했던, 산유국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이들 나라는 당초 세웠던 예산 집행 계획을 수정하는가 하면,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해 해외 금융시장에 손을 뻗을 계획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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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제유가가 폭락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가 장중 한때 배럴당 16달러를 밑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가격 수준은 1999년 6월 이래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브렌트유는 한국시간 오후 2시 현재 전거래일보다 15.93%(3.08달러) 하락한 16.2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8.7%(1.01달러) 하락한 10.56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유가가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연이어 급락세를 보임에 따라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중동 국가들의 재정이 흔들고 있다. 중동에서도 부국에 속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은 비교적 사정에 좋은 곳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올해 예산을 대거 삭감하기로 했다.
사우디의 경우 올해 예산을 5% 삭감하는 한편, 부채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30%에서 50%로 늘리기로 했다. 필요하면 국채 등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우디는 모하메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던 대규모 국책사업도 중단한 상태다. 카타트나 아랍에미리트도 이미 해외 자본시장에 손을 벌렸다.
산유국이지만 부국에 해당하지 않는 이라크나 알제리, 오만 등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이라크는 다음달부터 공무원들의 급여를 절반 정도밖에 지급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알제리의 경우에도 예산의 30%를 삭감했다. 알제리의 경우 960억달러의 외환보유고가 있지만 내년에는 128억달러만 남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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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그동안 유가하락에 대비해 국부펀드를 마련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 때문에 유가전쟁에서도 러시아는 승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유가하락에 러시아 국부펀드도 속수 무책이다. 당초 러시아는 유가가 떨어져도 국부펀드로 8년치의 예산 부족분을 매울 수 있다고 했지만, 이제는 4년 정도만 버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프리카 최대 원유 생산국인 나이지리아 역시 유가가 급락함에 따라 예산을 대거 삭감하는 한편 외부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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