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사건 2심' 22일 개시…홍모씨 단독 인터뷰
"단순 질식사? 5세 아이 다리에 눌려 사망 가능성 없어"
"법원, 전문가 분석 수용 안해…전체 수사과정 되짚어야"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 은닉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37) 재판 2심이 시작된다. 22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재판장 왕정옥)는 고유정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연다. 이번 항소심의 쟁점은 고유정이 의붓아들인 승빈(사망 당시 5세)군을 살해했는지 여부다. 지난 2월 1심 법원은 고유정의 전 남편 살해 혐의는 인정했지만, 홍군을 살해한 혐의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고유정은 의붓아들인 승빈군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승빈군의 친부인 홍씨가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사진=손의연 기자) |
2심을 앞두고 이데일리와 만난 홍씨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떠올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홍씨는 “1심에서 고유정의 거짓 진술에 따른 모순점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아빠인 저와 법의학 전문가의 진술이 인용되지 않았다”면서 “항소심에선 고유정의 살인 혐의와 함께 수사 당국의 과오까지 밝혀야 한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17년 고유정과 재혼한 홍씨는 2019년 3월 청주 자택에서 잠을 자던 도중 승빈이를 질식사로 잃었다. 두 달 뒤 고는 제주에서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법원은 별건으로 기소된 고유정 ‘전 남편 살해’, ‘의붓아들 살해’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다.
◇홍씨 “수면제 탈 시간 충분…5세 아이, 다리에 눌려 죽을 가능성 없어”
검찰은 고유정이 홍씨에게 수면유도제를 넣은 차를 마시게 한 뒤 승빈군의 뒤통수를 10여분 간 눌러 살해했다고 본다. 부검 결과와 법의학자 의견을 종합해 승빈군의 사인이 고의적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는 것이다. 이숭덕 서울대 의대 법의학연구소 교수는 법정에서 ‘사건 당시 함께 자고 있던 피해자 아버지의 몸에 눌려 숨졌을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고 답변했다. 부검의도 5세가량 유아면 당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승빈군의 사망 전날 홍씨가 옆에 있는 상태에서 고유정이 수면유도제를 차에 넣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아이가 잠든 홍씨의 다리에 눌려 숨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홍씨는 “법의학자는 (승빈이가) 눌린 상태에서 반대쪽 코로 숨 쉴 수 있는데도 질식사한 것은 고의로 누군가 눌렀기 때문이고 내 다리에 눌렸다면 목과 등에 출혈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며 “재판부는 내 다리에 눌려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근거를 제시 못했다”고 토로했다.
당시 홍씨의 머리카락 검사에선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홍씨는 “내 옆에 있어 (고유정이) 차에 수면제를 타기 어렵다는 말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집에서 항상 고유정과 붙어 있던 것도 아닌데 수면제를 탈 시간이 없었겠나”라면서 “그 공간에 나랑 고유정밖에 없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법원은 고유정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잠버릇 문자’로 “父 과실치사”, 검찰은 “高가 살인”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2월20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지법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홍씨는 또 경찰 수사가 초반부터 적극적이지 않았고 전체 수사 과정에서도 일관된 원칙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사건 초반 홍군에게 나온 혈흔이 많지 않다며 ‘타살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발표했다가, 홍씨가 반박하자 ‘타살 가능성도 수사 중’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승빈군 사망 후 두 달 뒤인 작년 5월에 나온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승빈군의 사인은 ‘압착에 의한 질식사’였다.
그는 경찰이 승빈군 사망 후 고유정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수사가 꼬였다고 비판했다. 홍씨는 “작년 5월 말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한 사실이 드러난 후 경찰은 엉뚱하게 내게 살인 혐의를 적용, 집까지 압수수색했다”며 “승빈이 사망 건과 관련 초반에 고유정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살인 혐의를 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찰은 이후 조사에서 8개월 전에 온 고유정의 문자를 들이밀면서 ‘당신 잠버릇 있다는데?’라며 아들의 사망을 나의 과실치사로 몰았다”면서 “앞서 부실 수사를 덮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부검 결과 타살 정황 의혹이 있었으면 나뿐만 아니라 고유정도 조사했어야 했다”면서 “경찰을 믿고 기다리다가 제대로 된 수사 시기를 놓쳤고, 결국 얼마 뒤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하기까지 이른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초동 수사 부실 논란에 대해 당시 경찰은 “아동학대 소견이 없어 부검 결과를 기다렸다”며 “(2019년) 5월 부검 결과를 통보받은 뒤 홍씨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이어 고유정도 동일하게 조사를 하려던 와중 제주에서 고유정의 전 남편 살해사건이 발생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홍씨에게 고유정의 형량은 중요하지 않다. 아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항소심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고유정의 1심 진술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잠버릇이 있다’거나 ‘사건 당시 (아이와 함께 있던) 방문을 닫으면서 남편밖에 못 봤다’는 고유정의 진술은 거짓말”이라면서 “또 ‘약봉지를 버렸다’고 했다가 나에게 수면유도제가 검출되자 ‘버리지 않았고 남편이 먹었을 수도 있다’고 번복한 점도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너무나 큰 사건의 중심이 되고 나니 상상 이상으로 묻히는 사건이 많겠구나 하고 느꼈다”면서 “다투고 싶어도 못 다투는 피해자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피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는 건 어렵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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