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상담기관 문의 증가…전문가들 "자녀 시선으로 보고, 구체적 예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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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예나 채윤환 기자 =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주부 정모(38)씨는 최근 초등학교 5학년 딸의 휴대전화를 함께 보는 일이 잦아졌다.
평소 아이가 친구들과의 메신저 대화 내용도 거리낌 없이 보여주던 터라 걱정이 없었지만, '박사방', 'n번방' 등 성(性) 착취 영상물 유포 사건을 알게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혹시나 하는 걱정이 생겨서다.
정씨는 12일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중에도 10대가 있다던데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하나하나 지켜볼 수도 없고 걱정"이라며 "주변 엄마들과 함께 괜찮은 교육이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모바일 메신저 프로그램 등으로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 실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딸이라면 혹여 피해자가 될까, 아들인 경우 음란물 등을 접하며 뒤틀린 성 인식을 갖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이들이 많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김모(36)씨는 "어릴 때부터 부모와 교감하면서 올바른 성교육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엄마들 사이에서 추천받은 성교육 책 3권을 샀다"고 말했다.
'n번방', '박사방' 이후 성교육, 상담을 문의하는 글들 |
아동·청소년 성교육과 상담을 담당하는 전문기관에도 성폭력 피해사례나 올바른 성 인식 등에 관한 학부모 문의가 느는 추세다.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의 권현정 부소장은 "n번방·박사방 사건이 불거진 이후 성교육·상담 문의가 평소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며 "전에는 큰 피해가 아니라고 여겨 넘어간 일도 많았지만 n번방 사건 이후 사소한 일이 심각한 피해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고 부모들이 적극 대처하는 듯하다"고 했다.
최근 상담 전화 중에는 과거 자녀가 경험한 일이 성범죄 피해에 해당하는지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들었는데 상대방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자녀가 사용한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온라인 그루밍(Groomingㆍ길들이기)'의 흔적을 봤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등이다.
자칫하면 가해자 쪽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아들을 둔 부모의 문의도 늘었다고 한다. 이명화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n번방 사건 이후 아들을 키우는 학부모 문의가 많아졌다"며 "아이가 음란물을 보는 게 아닌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묻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이 일회성 성교육이나 상담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자녀의 시선에서 함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명화 센터장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를 범죄자 취급하기보다 요즘 일어나는 일을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변 친구들은 어떤 것 같은지 함께 이야기해보라고 부모들에게 조언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또는 '지인 능욕'은 누군가 재미로 시작하더라도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대화로 끌어내는 식이다.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면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아이 스스로 깨닫게 하고, 온라인 그루밍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탁틴내일 김보람 팀장은 "성교육은 특별한 교육이라기보다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라며 "구체적 예시를 갖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다각적으로 폭넓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yes@yna.co.kr, yunhwan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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