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온라인서 협박·지시, 자신의 권력으로 인식"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에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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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미성년자의 성 착취물을 만들어 제작·유포·판매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가담자 중에는 또래 10대를 가해한 또다른 10대가 있었다. 디지털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잘 다루는 10대들의 특성은 오히려 디지털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학교·가정 등에서 억눌리고 불만을 가졌던 이 10대들이 n번방을 통해 강한 권력욕을 느끼고 자극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5일 경찰에 따르면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대화방 운영자 등 검거된 피의자 140명 가운데 10대가 2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는 'n번방'을 모방한 '제2 n번방'을 운영한 '로리대장태범(19)', '박사'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의 홍보책으로 활동하면서 1만여명의 회원을 모집한 '태평양(16)', n번방과 유사한 아동 성 착취물 공유방에 들어가는 초대 링크를 유포한 '커비(18)' 등 이 사건 주요 피의자들도 다수다.
n번방과 관련된 검거 피의자는 20대 78명, 30대 30명, 40대 3명이다. 경찰은 나머지 4명의 나이를 확인 중이다. 140명 가운데 대화방 운영자는 29명에 달한다. 유포자는 14명이었고, 성 착취물 등을 소지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는 97명이었다. 피의자 가운데 만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는 없다.
◆또래에게 잔혹했던 10대, 왜 = 이같이 많은 10대들이 n번방 사건에 가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n번방을 통해 올리는 수익,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 영상을 만들어내는 범죄 행위를 마치 '권력'이라고 느끼고 방종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0대는 온라인상에서는 구속이나 부담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는 데에서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며 "또래 10대 여성들을 협박하고 성착취물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현실에서 느껴보지 못한 권력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순종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는 "10대들은 디지털 정보를 쉽게 접하고 활용한다"며 "그렇다보니 범죄에도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왜곡된 성문화를 만들어낸 성인들의 책임도 지적했다. 그는 "이미 주요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청소년보호책임자'를 지정해 운영해야하는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갖은 성인 광고, 그릇된 성문화를 여과없이 온라인 상에서 노출하고 관리하지 않은 성인들도 n번방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정보통신망 상의 유해매체나 유해정보로부터 효과적으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일일평균이용자 10만 명 이상 또는 매출 10억원 이상인 사업자에 대해 청소년보호책임자를 두도록 하고 있다. 청소년보호책임자는 정보통신망의 청소년 유해정보를 차단·관리하고 청소년유해정보로부터 청소년 보호 계획을 수립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처벌은 엄하되 교정 가능성 열어놔야 = n번방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어느 사건보다 크다.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를 원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소년'이라는 이유로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분이 내려졌던 과거 사례 등이 소환되며 무거운 형벌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경찰이 조주빈의 공범들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를 검토하고 있지만 청소년은 신상정보 공개 대상에서도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특정강력범죄법)'에 따르면 신상정보 공개 요건은 ▲범행 수단이 잔혹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위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닐 것을 전제했다.
곽 교수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처벌을 바로 언급하는 것은 이르다"면서도 "범행의 정도에 따라 만18세 미만의 소년이라면 형사처분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고 봤다. 이어 "미성숙한 소년에 대해 성인범과 구별해 보호처분을 내리는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며 "개별적 상황에 맞게 교정 처벌을 하고 사회에 돌아올 수 있는 노력을 우리사회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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