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정윤경 인턴기자 = "왜 매번 이런 일만 터지면 피해자가 겪는 2차 가해는 피할 수 없는 걸까요."
서울 한 대학교 강사 김모(37)씨는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미성년자 성 착취물 유포 사건이 온 국민의 시선을 끌면서 피해자 신상, 사진 등이 유포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글이 온라인에 게시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김씨는 "매번 디지털 성범죄가 터지고 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곤 한다"며 "반복되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길이 없는 건지 씁쓸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모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n번방 연관검색어로 나온 단어들 |
지난해 '버닝썬 사건'과 유명 연예인 불법 촬영물 사건을 비롯해 n번방 사건의 공통점은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이 겪는 대표적인 2차 가해는 신상털이와 인신공격이다.
한 유명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n번방' 단어를 입력하면 피해자 사진이나 이름, 영상 등으로 자동 완성된다. 불법 촬영물이 공유됐던 단체 채팅방 주소나 파일 등 연관 검색어가 따라붙기도 한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비난하는 글도 발견된다.
한 유명 커뮤니티 이용자는 지난 22일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피해자가 자초해서 벌어진 일 아니냐"고 주장했다. 지난 23일에는 같은 커뮤니티의 다른 이용자가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자청한 것 같은데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다"는 글을 남겼다.
대학생 이모(23·경기도 시흥시)씨는 26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채팅방에서 몇몇 학우가 '영상 궁금하다'라는 글을 농담 삼아 종종 올린다"며 "아직 우리 사회가 피해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서글펐다"고 말했다.
이성용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27일 연합뉴스에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행동을 했든 그 모든 여부를 떠나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서는 안 된다"며 "특히 성범죄 문제를 두고 가장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혼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한국피해자학회 이사)도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악질적인 부분이 피해자에게 일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보행 신호에 맞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으나 과속 차량에 사고를 당한 행인에게 '네가 부주의해서 그런 거다'라고 비난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기업과 신고기관의 세밀한 대책이 있어야 2차 피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 교수는 26일 연합뉴스에 "연관 검색어 서비스는 본래 이용자 편의를 이유로 만들었지만 n번방 경우처럼 악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법으로 규제하기보다는 2차 피해나 개인정보 유출 등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에 한해 포털 사이트가 이 기능을 중단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수사기관이나 상담센터 등이 조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신상이 노출되거나 또다른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며 "신고를 했더니 신상 보호는 물론이고 불법 촬영물도 신속히 삭제됐다는 선례를 남겨야 다른 피해자들도 문을 두드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관계자는 같은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과 삭제 지원 시스템을 지난해 말 구축해 올초부터 시범 운영 중이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요청해야만 본인 확인 후 삭제 처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며 적극적인 신고를 당부했다.
이 관계자는 "내달 말부터는 친인척만 대리 신고도 가능하도록 범위를 넓힐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벌어진 n번방 사건 (GI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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