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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이경환의생활속법률이야기] 구차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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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위조화폐를 사용하다가 검거되어 기소된 피고인이 재판과정에서 판사의 심문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피고인은 화폐를 위조하고 이를 행사한 잘못을 인정하는가요?”

“판사님. 인정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이 위조화폐를 사용하다가 검거되었는데, 왜 이를 부인하는가요?”

“사실은 제가 남의 화폐를 훔친 것인데, 진짜 돈인 줄 알고 사용한 것이므로, 부인합니다.”

“그러면 절도죄에 대하여는 잘못을 인정하는가요?”

“아닙니다. 위조화폐는 경제적 가치가 없어 재물이 되지 않으므로, 제가 훔친 잘못은 있지만 범죄를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피고인의 변명은 옳은 것인가?

먼저, 화폐위조죄에 대해서 살펴보자.

화폐를 위조한 사실이 없으므로 화폐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위조된 화폐가 진실한 화폐인 줄 알고 사용한 것이므로, 피고인의 말대로 고의가 없어 위조화폐 행사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면, 절도죄는 성립하는가?

절도죄의 행위객체인 재물에는 경제적 재산가치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따라서 피고인에게 절도죄는 성립한다. 재산범죄인 절도죄에 대해서 경제적으로 피해의 정도가 다소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행위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할 경우에는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높아 처벌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인하며 자신들의 집단 가치관에 비추어 잘못이 없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래를 향한 올바른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도덕관념과 가치기준이 확고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형법은 ‘도덕의 최소한’을 바탕으로 하는 규범으로서, 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행위에 대해서는 엄벌함으로써 견실하게 사회질서를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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