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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정희모의창의적글쓰기] 개요 작성과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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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범죄추리 소설가 존 그리셤은 글을 쓰기 전 상세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책을 쓰기 전에 전체적인 항목을 설계하고 개요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책 한 권 쓰는 데 6개월밖에 걸리지 않을 때 개요 작성을 위해 1, 2년을 사용하기도 했다. 전체 개요뿐만 아니라 장별 개요를 세밀하게 쓴 적도 많았다. 계획에 따른 플롯이 완벽하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엄격하게 그 개요에 따랐다.

반면에 같은 분야의 추리소설가인 스티븐 킹은 계획하기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표현했다. 그는 소설을 쓸 때 미리 플롯을 짜는 것은 창작의 자유를 막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을 쓸 때 우리가 불가피하게 부딪치는 삶의 상황을 만들고 그 속에 등장인물을 풀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서사적 이야기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작가는 그것을 발굴하면 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우리 삶 어디에 계획이나 플롯 같은 것이 있냐고 반문한다.

소설만이 아니라 짧은 글을 쓸 때도 개요를 쓰는 것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견해도 상반된 것이 많다. 글을 쓰는 데 개요를 쓰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여러 학자의 일반적 시각이다. 그러나 이와 상반된 연구결과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미국의 스피비 같은 학자는 성인 40명을 대상으로 개요의 양과 글의 수준을 비교했는데 개요 작성이 끼친 긍정적인 효과는 없었다. 리버비츠의 연구도 비슷했다. 실제 글을 쓰는 학생 중에는 자세한 개요를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마치 존 그리셤처럼 한자 한자 따라 쓰는 경우가 있다. 대개 이런 글은 정보만 나열되어 생동감이 없고 딱딱해진다. 또 상세한 개요를 따라가면 글을 쓸 때 생기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개요는 필요하지만 너무 상세한 개요를 작성해서 거기에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행을 떠날 때 부산이든 강릉이든 목적지와 가는 길을 정하고 출발하면 되지 거기다 세세한 내용까지 첨부하게 되면 오히려 불편한 여행이 되기 쉽다. 개요 작성은 논문이나 논설문같이 어려운 장르에 효과가 있었다. 또 글쓰기에 미숙한 사람에게 더 효과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우리 자신이 상황에 맞게 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쓰기 과정의 창의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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