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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n번방 수사]피해자 구제, 불법영상물 삭제보다 ‘엄벌’이 근본적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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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등 삭제 활동에도

플랫폼 재유포 막기 어려워

피해자, 인지 못하는 경우도

가해자 처벌·제도개선 필요

경향신문

“성착취 끝장내자”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성착취 가담자 전원을 엄중처벌하고, 피해자를 지원·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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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은 ‘영상이 유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유포, 재유포를 막지 못한다면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은 물리적 성폭력보다 더 오래, 더 크게 남을 수 있다. ‘n번방’ 사건을 비롯해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들에 대한 영상물 삭제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방송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경찰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디지털 성범죄 공동대응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여가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에선 삭제 지원과 함께 의료·수사·법률상담을 제공한다. 현재 이 센터에서 삭제 지원 업무를 하는 인력은 총 9명이다.

삭제 지원은 피해자의 직접 신청이나 수사기관의 의뢰로 이루어진다. 센터 관계자는 “주요 해외 음란물 사이트를 중심으로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해 유포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텔레그램 같은 폐쇄형 소셜미디어는 영상이 유포되는 방을 하나하나 확인해 플랫폼 사업자에게 채널 삭제 요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트위터나 텀블러 같은 플랫폼은 센터의 삭제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는 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35명의 심의 인력을 두고 24시간 신속심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방심위는 방통위설치법에 따라 불법촬영물 유통금지의무를 위반한 인터넷 사업자를 제재할 수 있지만, 성착취물이 주로 유통되는 해외사업자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해외 사업자가 삭제 협조에 불응할 땐 해당 URL의 국내 접속을 차단한다.

김영선 방심위 확산방지팀장은 “지난 1월부터 n번방 피해자들의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2월 기준 텔레그램·디스코드 215개 계정을 차단 조치했다”며 “언론 보도 이후 텔레그램 방이 줄어드는 추세인 건 사실이지만 다른 플랫폼에서 재유포된 사례가 확인돼 모니터링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삭제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디지털 환경에 원본 영상이 유포되면 언제 어느 플랫폼에서 재유포가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불법 포르노 사이트의 경우 크롤링 검색(소프트웨어가 여러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 특정 데이터베이스로 수집하는 방식)으로 유포 현황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지만 텔레그램은 최대한 많은 방에 들어가 신고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제대로 된 지원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모니터링 과정에서 유포가 많이 된 피해자를 발견해도, 피해자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구제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다크웹상 아동·청소년 음란물의 규제 현황 및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비영리단체 전미아동실종착취센터(NCMEC)는 500만개 이상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분석해 4000명 이상의 피해자 신원을 확인하고 가해자를 처벌했다.

김 팀장은 “현재 방심위의 심의 방식은 인력에 의존하는 원초적 방식”이라며 “매체가 달라져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해자 처벌과 제도개선이야말로 궁극적 해결책이다. 서 대표는 “디지털 성폭력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영상 하나를 지우는 건 의미가 없다”며 “성인 불법 촬영물에도 소지죄를 신설해 영상을 다운받는 것도 범죄행위로 규제한다면 예방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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