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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예영준의 시선] 시진핑은 왜 WHO에 직접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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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키운 WHO의 오판과 방심

그 뒤엔 중국의 보이지 않는 손

WHO 쫓겨난 대만은 방역 모범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정부의 확고한 조치가 감염 사태를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다른 나라들에 큰 격려인 동시에 본보기가 된다.”(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정부와 국민의 노력과 희생을 대가로 방역 작업이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을 축하한다. 귀국의 유익한 노하우를 연구 분석 중에 있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넘겨짚지 말자. 전화로 이런 칭찬을 받은 사람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똑같은 말을 했다. 오늘 G20 화상 정상회의가 열리면 더 많은 칭찬이 쏟아질 것이다. 과연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될까.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쉬쉬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제때에 알리지 않고 설 연휴 기간 수백만 관광객이 해외로 나가도록 방치해 전세계로 바이러스를 퍼뜨린 책임에 유럽 정상들은 눈을 감은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임상 경험을 가진 중국의 정보 제공과 물자 지원이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데 필요하니 꾹 참고 말한 외교 수사가 아닐까.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에 보낸 칭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다만 한국 의료의 신속한 검사와 치료 능력, 유일하게 사재기가 없는 한국인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한 찬사엔 진정성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은폐 책임이 사라지지 않듯 한국 정부의 안일한 초기 대응과 마스크 대란의 허물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하다 못해 가래로 막을 수도 있었던 일에 지금 온 나라의 포클레인을 총동원해 난리를 치르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의 출현은 아무도 예측못한 ‘블랙스완’이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전세계로 퍼지는 사태는 막을 수도 있었다. 못막은 원인은 방심이다. 체격 좋은 서양인들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다닥다닥 붙어 사는 동양인들이나 걸리는 것이라 믿었다. 코로나를 날씨 풀리면 물러날 감기 쯤으로 비유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말이 딱 그랬다.

그 방심을 부추긴 게 다른 기구도 아닌 세계보건기구(WHO)란 사실엔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선제적 경보는 커녕 비상사태 선포도, 팬데믹 선언도 모두 뒷북이었다. 중국 감염자가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할 무렵에도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잘 막고 있는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며 “인적 이동 제한을 권하지 않는다”고 반복했다. 우리 정부가 의사협회나 감염학회의 진언을 일축한 명분도 WHO의 권고였다. 지금 그 권고를 따르는 나라는 아무도 없다.

WHO 총장은 왜 그런 권고를 반복했을까. 중국의 입김 이외에는 설명이 안된다. 테워드로스 총장은 에티오피아의 보건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그가 외무장관 자리에 있던 2012~16년은 중국이 일대일로의 교두보인 에티오피아의 철도·항만에 막대한 투자를 한 시점과 겹친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3위 투자국이다. 테워드로스의 전임자인 홍콩인 마가렛 찬은 중국의 추천과 지원으로 WHO 총장이 됐다.

2017년 1월 시진핑 주석은 다보스 포럼 참가를 겸해 스위스 방문길에 올랐다. 그 때 빠듯한 일정을 쪼개 제네바의 WHO 본부를 방문했다. 하도 특이해서 당시 베이징 특파원이던 필자의 기억속에 아직 남아 있다. 중국 국가주석이 WHO를 찾은 건 사상 초유였고 앞으로도 있기 어려운 일이다. 내막은 밝혀진 게 없지만 중국이 WHO에 대단한 공을 들여왔다는 것을 뒷받침하기엔 충분하다. 테워드로스 총장의 중국 두둔 발언은 이로써 설명이 된다.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은 WHO 에이즈퇴치 친선대사를 5년 이상 맡고 있다. 이런 사실은 유엔 산하 전문기구 15개중 4개 기구의 사무총장 자리를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비하면 약과일 수도 있다.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의지가 그만큼 집요하다는 의미다.

중국의 입김이 세진 WHO체제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대만이다. 국제기구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옵저버 자격을 유지하며 총회 참석권을 갖고 있던 WHO에서 2016년 축출된 것이다. 대만 외교 고립에 나선 중국의 압력에 의한 것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WHO에서 수모를 겪은 대만이 코로나 방역에서 WHO 권고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WHO의 권고를 믿고 따른 나라는 바이러스에 뚫리고, 대만·싱가포르 등 WHO 권고와 반대의 길을 선택한 나라들은 방역의 모범이 되었다. 방역과 정치의 착종이야말로 방역을 망치는 주범이다. WHO 스스로 반면교사가 되어 알려준 진실이다. 그 뒤에 국제사회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의 힘이 어른거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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