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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필동통신] 쓸쓸하게 맞는 안중근의사 순국 1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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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110년 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날입니다. 금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예년과 달리 안중근의사기념관 밖 동상 앞에서 임원들만 모여 간소하게 추도식을 거행할 예정입니다. 해마다 안 의사를 숭모하여 찾아오는 일본인들에게도 금년에는 오시지 않도록 조치하였습니다. 한일 관계가 냉랭한 가운데서도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을 가교로 삼아 다정히 지내오던 두 나라 사람들에게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년에는 모든 문제들이 잘 해결되어 함께 안 의사를 추모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일본에서 찾아오는 분들은 지역적으로 다양하고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도 다릅니다. 그 가운데 한 그룹이 교토 소재 류코쿠(龍谷)대학과 관련된 분들입니다. 류코쿠대학은 안 의사의 유묵 4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류코쿠대학은 2009년 처음으로 이 유묵들을 공개함으로써 그 사실이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 산재된 유묵들을 모아 전시하기로 하여 류코쿠대학에 대여를 요청하였습니다. 학교 측은 전시 후 제대로 반환될 것인지를 걱정하는 일부 인사들의 반대에 부닥쳤으나 결국 우리의 설득 노력 끝에 대여해주었고 유묵들은 전시 후 반환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양자 간에 신뢰가 생겼습니다.

이를 계기로 류코쿠대학 사회과학연구소에 안중근동양평화센터가 설립되었고,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동양평화센터는 협정을 체결하고 해마다 양국을 오가며 학술교류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도 교토에서 학술대회가 열렸고, 저는 '유럽연합(EU)과 독·불 관계에서 배우는 교훈'이라는 강연을 하였습니다. 강연 내용은 EU의 기본 구상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며, 동양평화론이 바람직한 한일 관계 형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간 양국 간 학술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분들 중 한 분이 도쓰카 에쓰로(戶塚悅朗) 교수입니다. 종군위안부, 식민지 피해자 문제 등을 연구한 국제인권법 학자로서 1992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한국인의 전시강제연행 문제와 종군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분입니다. 류코쿠대학의 유묵 공개 및 한국 대여와 동양평화센터 개설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젠 정년 퇴임하였으나 아직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번 학술행사에도 발표자로 나섰습니다.

그는 안 의사의 재판 관련 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당시 일본이 정당한 재판권을 가졌는지 의문을 품고 재판관할권의 근거가 된 1905년 이른바 을사보호조약 효력에 대한 기존 연구 등을 검토한 끝에 재판은 무효인 을사보호조약에 터 잡은 불법 재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쓰카 교수는 그동안 발표한 논문을 묶은 '역사인식과 일한 '화해'로의 길'을 책자로 발간하게 되었다며 저에게 이 책이 한국에서 번역·출판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전문 서적으로 상업성은 없어 비용이 드는 일이지만 일본에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국 입장을 이해하는 바탕에서 양국의 화해를 바라며 활동해온 분의 뜻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저는 추진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얼마 전 출판된 책을 보내왔습니다. 본인도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방문은 차후로 미뤄졌습니다.

한편 류코쿠대학에 동양평화센터를 설립하고 학술교류에 힘쓰던 학자들도 은퇴하고 있고 젊은 학자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과연 센터가 존속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어떻게든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매개로 한 우호적 한일 관계 지속을 위해 소중한 역할을 하는 센터가 존속될 수 있게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뜻에서 도쓰카 교수의 책 번역·출판처럼 안 의사를 숭모하는 분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쓸쓸하게 치르는 추모식 날 아침에 떠올리는 제 생각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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