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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기고] 사회적 거리는 멀리, 심리적 거리는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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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유럽의 봄은 남쪽에서 온다. 북아프리카의 훈풍이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이르면 꽃들은 축제를 준비한다. 해마다 사순절을 앞두고 베네치아는 수백 척의 곤돌라 행진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12세기에 시작된 베네치아 축제는 '가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가면은 아랍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신분 차이로 귀족과 평민이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가면이 등장했다고 한다. 축제는 더욱 즐거워졌지만 사건·사고가 늘어나면서 가면을 금지하거나 아예 중지시켰고 50년이 지난 1979년에서야 재개되었다.

봄 축제의 기쁨은 접어두고 지금 이탈리아는 코로나19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위급 상황임에도 마스크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위생용 마스크마저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얼굴을 가리는 것은 특수한 상황에 쓰는 것이고 평소에 사용하면 뭔가 정당하지 못하고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스크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심리적 거리 두기'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19가 확산돼 큰 고통을 겪고 있고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지만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방역체계라는 칭송도 받고 있다. 모임을 자제하고 스스로 예방수칙을 지킴으로써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것은 국민들의 참여 의식과 의료인들의 희생과 봉사, 국가의 관리 의지 등이 어우러진 상생협력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로 원자재·부품 조달에 큰 애로를 겪고 있으며, 수출 중소기업은 수출시장의 23%를 차지하는 중국의 수요 감소가 예상된다. 또한 경제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영세 자영업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심리적 불안감으로 소비 냉각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를지 가늠하기 어려워 지난 19일 G20 국가들은 무려 4조달러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우리 정부도 100조원 규모의 특단 대책을 발표하여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상의 고통이 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다.

이처럼 비관적인 상황이지만 지금부터 '포스트 코로나'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사태가 수습되고 예방용 마스크를 벗었을 때 자칫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심리적 거리 두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마스크는 코로나19 예방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서양인들의 오랜 의식체계에서 보였던 그와 같은 심리적 거리 두기로 연결된다면 더불어 산다는 공동체 의식이 훼손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경제 회복력'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기회를 선취하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대증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복구한 뒤 그들에게 충실한 성장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장 참여자 간의 심리적 거리 두기를 지양하는 정책적 설계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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