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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매경춘추] 어미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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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내가 매일 하는 일,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은 읽고 쓰기 외에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고양이 사료를 챙기는 일이다. 거리가 집인 고양이들을 위해 정해진 곳에 사료를 놓아두면 녀석들은 한 마리씩 찾아와 먹고 떠난다. 멤버는 자주 바뀐다. 꾸준히 찾아오는 녀석도 있고, 며칠 보이다 안 보이는 녀석도 있으며, 못 보던 녀석이 새로 합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오래 볼 수 없다. 그중 배가 불러온 고양이가 있었는데, 곧 새끼를 낳겠구나 싶었다.

아파트 뒤에는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된 빈집이 하나 있다. 기와 지붕 아래로 슬레이트 지붕을 담까지 덧대어 2단 지붕으로 된 집인데 거기다 고양이가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장소를 잘 택한 것 같았다.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서 사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곳. 지붕과 지붕 사이 틈새가 둥지가 되어주어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고, 낮에는 햇볕이 가득했다. 자동차로부터도 안전했다. 어미와 새끼들은 내려오지 않고 겨우내 지붕에서만 지냈다. 나는 매일 사료를 긴 뜰채에 담아주었다. 사료를 붓고 뜰채로 지붕을 두 번 탁탁 치면 '파블로프의 개?'가 아닌 고양이처럼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고개를 쏙 내민다. 그러고는 주변을 잠깐 경계한 뒤 사료로 둥그렇게 모여든다. 그러나 어미는 늘 슬쩍 뒤로 빠진다. 새끼들이 다 먹고 자리를 비우면 그제야 다가와 조금 먹는다. 사료를 따로 챙겨준 뒤로 새끼들은 지붕 위에서 잘 뛰어놀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새끼 두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전날까지도 문제없이 지냈기에 나쁜 일이 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 손을 탄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주는 사료보다 더 맛있는 걸 찾아서 가버렸을까. 두 마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새끼들이 어미를 떠난 것으로 이해했다. 이제 지붕 위에는 셋뿐이었다. 내가 주어야 할 사료의 양은 줄어들었지만 줄어든 만큼 왠지 쓸쓸해졌다. 그러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한 마리가 어미 곁을 떠났다. 그 고양이도 결국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 곁에 남은 새끼 고양이는 이제 한 마리뿐. 효자 같았다. 조금 더 줄어든 사료를 붓고 지붕을 탁탁 치면 어미는 양보하는 거 없이 새끼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몸이 제법 자란 새끼 고양이는 어미를 잘 따라다니며 지붕 위에서도 곧잘 내려왔다. 어느 날은 배수로 구멍 앞에서 어미가 새끼에게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걸 보았다. 어미가 하는 행동을 새끼가 그대로 따라했다. 교육을 마친 것일까. 며칠 후 마지막 새끼 고양이마저 어미 곁을 떠났고, 어미는 홀로 남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창문으로 고양이들이 올망졸망 뛰어놀던 지붕을 쳐다본다. 아무도 없는 지붕에는 이제 바람만 지나다닐 뿐이다. 요즘은 어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게 어미의 삶인가 보다.

[장은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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