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불쌍한 이유 모르겠다” 조롱하는 댓글도 줄줄이 달려
피해자들 “사안 자주 언급되며 찾는 사람 늘어 두려운 마음 커”
21일 한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 'n번방' 회원 인증 글과 사진이 게재됐다. 해당 게시물에는 얼굴만 엉성하게 가린 미성년자의 나체 사진부터, 모자이크조차 안 된 여교사 사진 등이 캡처물로 포함됐다. 온라인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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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조심히 인증해본다.’
21일 오전 한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성착취 영상 공유방인 텔레그램 ‘n번방’의 회원임을 인증한다는 글이 잇따라 게시됐다. 자신이 참여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오가는 성착취 영상물 공유 상황을 캡처해 사진으로 올리기도 했다. 엉성한 모자이크로 얼굴만 겨우 가린 미성년자 나체 사진 등 충격적인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지만 해당 게시물들에는 ‘피해자가 불쌍하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며 희롱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n번방’ 후속으로 등장한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씨가 구속된 사실이 알려졌지만 게시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사방’을 비롯한 텔레그램 내 성착취 영상물 제작ㆍ유포 대화방인 ‘n번방’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음란물 사이트를 통해 피해물 혹은 피해물을 캡처한 사진이 나도는가 하면, 수사망을 피해 해당 영상물을 1대 1 방식으로 판매하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n번방’ 논란이 불거진 직후부터 2차 가해물 다수가 게재됐다가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다. 미성년자 등 여성의 나체가 일부 보이는 사진은 물론, 얼굴이 가려지지도 않은 여성 교사들의 수업 현장 모습도 공유됐다. 대부분 자신이 ‘n번방’ 등의 회원임을 인증하면서 자랑하듯 올린 게시글이다. 다수 음란물 사이트의 검색창에는 ‘n번방’이 주요 키워드로 생성돼 일부는 스트리밍이 가능하다.
성착취영상물 거래를 점차 개인화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를 지속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단체대화방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찰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수법이다. 대체로 트위터에 ‘n번방 영상 판매’ 계정을 만들어 카카오톡 혹은 라인 아이디를 공개해 놓고, 문의를 해 오는 이들을 상대로 1대 1 대화를 통해 영상을 판매한다.
실제 23일 오후 취재를 위해 라인으로 접촉한 한 영상 판매자는 “용량 11기가짜리 ‘n번방’ 영상을 5만원에 판매한다”며 수십개 파일 목록 사진을 제시했다.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피해자의 이름과 누군가 매긴 영상물의 등급을 제목으로 설정해 놨다. 판매자는 “대포 통장을 쓰지 않고 일반 계좌 거래를 하니 바로 돈을 넣어달라”는 말로 입금을 재촉했다.
‘n번방’ 흔적이 곳곳에서 나도는 사이 피해자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이날 한국일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인터뷰한 피해자 2명은 모두 피해 사실을 수사 기관 등에 신고하지 못한 이유로 ‘2차 가해 가능성’을 꼽았다. 피해자 A씨는 “사건을 알리고 싶어도 오히려 내 영상물을 찾아보거나 나를 향해 가해질 조롱의 말이 무서워 그간 신고하지 못했다”며 “최근 사안이 자주 언급되면서 오히려 불법 영상물을 간 크게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토로했다.
일부에서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n번방’ 활동기록을 삭제할 수 있다는 정보가 나돌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 전임 회장이었던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대화나 다운로드 기록 등은 텔레그램 본사 서버도 남아있기 때문에 본사에서 직접 삭제해주지 않는 한 일반 개인이 삭제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본사의 위치조차 베일에 가려진 텔레그램의 경우 지금까지 어떤 기관에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n번방'에 대한 처벌 여론이 들끓는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여전히 n번방 자료가 거래되고 있다. 온라인 화면ㆍ대화 메신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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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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